"30평이 13억 5천에 나온 건 흔치 않아요! 24평이 지금 13억 5천인걸 감안해서 보세요!"
"그 집 바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나는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겨둔 채, 부동산으로 향했다. 아기가 생기고 짐이 늘어나면서 20평대는 아기를 키우기 좁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도,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방 1개는 무조건 책상과 책과 컴퓨터가 차지해야 하니 집이 무조건 넓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인 브랜드, 평지, 역세권, 신축, 국민평수, 직주근접(일주일에 1~2번은 출근하기도 하니깐)을 고려하면 최소 15억이 넘어갔다. 내가 30평대 아파트를 고집하는 게 불가능해진 셈이다. 그런데 20평대와 같은 가격으로 30평 아파트가 13억 5천이라니..! 13억 5천에 취득세 4천을 더하면 대략 14억이 필요하지만, 영끌하면 14억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하반기까지 만기인 전세가 7.8억 들어있어서 갭투자를 해야 하지만, 우리도 마침 내년 하반기에 살고 있는 전셋집이 만기 되니 일정도 딱 맞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 바로 부동산으로 향했다. 신축 브랜드 아파트답게 조경도 외관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유모차를 끌고 다닐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단지 내 어린이집까지 보면서 여기에서 아기 키우며 살기 딱 좋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2층이라는 단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아기가 뛰어놀아도 층간소음이 없는 1층이었으면... 1층도 아니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2층이라니. 조망권도 딱 아파트 단지 중앙을 보고 있어서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 분들도 커튼을 많이 치고 사는 느낌이었다. 2층이라는 점 빼고는 모든 게 완벽한 집이었다. 2층이라는 게 아쉬운 내 마음과 달리 시세대비 저렴한 가격이라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와서 그런지 부동산에서는 곧 나갈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2층인 게 아쉽네요.. 바깥에서 집안이 보일 수도 있고 조망권도 답답해 보이긴 하네요."
"그러니깐 시세보다 저렴한 거예요."
"조금 더 가격을 네고할 순 없을까요?"
"가격 네고는 절대 안 돼요. 지난번에 13억에 산다는 사람 있었는데 집주인이 거절했어요."
"아.. 그렇군요... 사실 저희가 아직 전세 살고 있어서 갭투자로 여길 산다고 하면 주담대 대출이 불가하니 당장 현금이 필요한데,, 그 현금을 바로 만들려면 신용대출과 예금 묶어 놓은 돈을 모두 빼야 하거든요. 당장 만기가 3개월 남은 예금이자를 포기하고 뺀다면 그 돈도 너무 아깝고 그래서요."
"그 돈이 얼마나 되는데요?"
"받아야 하는 예금이자랑 내야 하는 신용대출 이자 합치면 1년간 1500만원은 될 것 같아서요. 그만큼이라도 네고를.."
"1500만원밖에 안되잖아요. 집값이 천만원, 이천만원 오르는 건 정말 순식간인데 1년에 1500만원 비용 내서라도 맘에 드는 집 잡는 게 낫죠."
"아.. 그렇긴 한데,, 그렇게 1년 일찍 사서 집값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만약 현재 시세 그대로 유지하거나 떨어지면 저희 입장에서는 손해라서요.."
"집값이 떨어지진 않을 거예요. 여기 개발호재가 많아서요."
"혹시 사장님도 여기 아파트 거주하시나요?"
"네. 저도 여기 살아요. 그럼 잘 의논해 보세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열심히 계산기를 돌려보았다. 전세보증금을 제외하고 현재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돈과 신용대출의 이자까지. 토스로 신용대출을 알아보니 나에게는 최대 1.3억, 5.5% 이율로 가능했다. 집을 살 때 신용대출은 최대 1인당 1억만 가능하니 부부가 각각 1억씩 신용대출을 받으면 총 2억의 현금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자를 계산해 보니 2억 신용대출이면 1100만원의 이자가 나온다. 더불어 예금이자가 높을 때 묶어둔 예금이 만기 3개월뿐이 안 남았는데 그걸 포기하는 것도 아까웠다. 마지막으로는 지금 집을 사면 내년 6월에 재산세를 내야 하는데 그것도 400만원이나 될 테니, 여러모로 실거주하지 않는 집을 미리 사는 것에 대한 비용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추가로 내면서 1년 일찍 2층에 위치한 아파트를 사야 하는 게 맞을까? 당장 전세계약 만기까지는 1년이 남았지만, 집값이 더 올라서 지금 본 아파트가 엄두도 못 낼 만큼 올라있으면 어쩌지 두려웠다. 재테크를 위해 레버리지를 사용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신용대출까지 풀로 당겨 쓰는 건 말 그대로 영끌인데.. 이렇게 영끌해서 이자 갚으랴 원금 갚으랴 우리에게 여유가 있을까? 이러다가 둘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기라도 하면?! 집값이 올라서 원하는 집을 못 살까 봐 걱정하다가 이자를 계산하니 다시 우리의 삶이 대출 갚느라 팍팍해질 것이 더 걱정되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아기가 없을 때나 가능하지.. 지금은 100일도 안된 아기가 있는데.. 이 귀여운 아기를 두고 엄마, 아빠가 밤낮없이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에너지를 돈 버는데 모두 쓰고도 엄마아빠 얼굴을 보며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보며 같이 웃을 수 있을까? 비싼 집에 살면서 시간이 쫓겨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당장 우리에게는 이 집이 과욕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 내가 오늘 보고 온 13억 5천짜리 집 내부가 30평이라 확실히 넓고 부엌도 크고 좋더라. 단지도 이렇게 고급스러워."
"13억이나 줘야 하는 집인데 당연히 좋아야지."
"그런데 2층인데도 13억이 넘는 게 아쉬워. 그래도 집내부랑 아파트 조경이 진짜 멋있어~ 지상에 차가 없는 단지여서 아기가 뛰어놀기도 좋아보여! 그리고 역세권인데 역이 얼마나 가깝냐면 거의 5분도 안 걸릴거 같더라!”
…..
"이사 가려고 집 보러 다니는데,, 엄마가 돈 못 보태줘서 미안해."
화려한 아파트를 보고 눈에 휘둥그레진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말이 없어진 엄마는 고개 숙이고 되려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산후조리하는 나를 대신해서 아기를 하루종일 봐주시면서 충분히 내게 많은 걸 해주셨는데.. 괜히 비싼 집 보고 다니면서 들뜬 내가 엄마에게 부담감을 주고 있던 건 아닐까.
최종결정을 위해 저녁에 남편과 좀 더 의논해 보고 주말에 한 번 더 남편이랑 집을 보러 갈까 싶었다. 나 혼자서는 그 집을 사는 게 맞을지 여전히 고민이 들었기에 남편의 생각도 듣고 싶었다.
"남편.. 나는 집 내부도 마음에 들고, 위치도 정말 좋아서 살고 싶긴 하더라.. 아기가 뛰어노는 게 상상돼서 행복했어.."
"네가 마음에 들면 13억까지 네고를 해보고 살까?"
"그렇지만.. 이자가 너무 많아서. 이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모을 수 있는 현금이 적어지는 거라서 고민이야."
"맞아.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우리가 그 집을 못 사도 몇 년 돈 모아서 사면 되니깐 차라리 그 앞에 있는 아파트 20평대로 사서 돈을 모은 뒤에 갈아타기로 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렇지. 아직 아기도 어리고, 우리도 젊으니깐 한 번에 너무 욕심낼 필요 없이 차근차근 늘려가자."
"돈 많이 모아두지 못해서 미안해요."
남편은 내게 미안해했다. 집값이 비싼 건 남편의 잘못이 아닌데. 우리의 한도를 넘어선 집을 욕심낸 내 잘못인데, 남편은 그 집을 보고 온 뒤로 돈을 더 벌어야겠다 싶었는지 아침부터 출근해서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브랜드 신축 아파트에 사는 게 당장 돈을 더 벌기 위해 아기도 제대로 못보고 우리의 시간을 갈아 넣는 것보다 행복할까? 아기가 커가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는데 집값 올라갈 것에 겁먹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끌로 집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은 포기해도 차근차근 모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으니깐.
기다려라. 더 좋은 집으로 갈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