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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Oct 01. 2019

기 센 여자가 어때서?

'기 센 여자'를 기피하는 사회

“기 센 스타일보다 나는 여성스럽고 순한 스타일이 좋아”

소개팅을 해달라고 하는 주변 남자분들의 취향은 보통 하얗고 야리야리한 청순가련한 스타일이 공통적이었다. 간혹 가다가 “잘 놀고 나를 휘어잡는 여자”가 좋다고 말하는 남자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남자들은 십중팔구 자기에게 순종적이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가련 여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건 남자들만의 로망이 아니었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의 오빠는

이전에 만났던 기가 쎄보이는 여자 친구들은 모두 아버지 선에서 컷을 당했다고 한다.

“기 쎈 여자들은 우리 오빠 잡아먹는다고 아빠가 안 된다고 했는데 이번 여자 친구는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둥이라 아빠가 바로 오케이 했지.” 그 아버님은 아들이 기 센 여자를 만나 기를 못 펴고 살걸 걱정하셨다.

아들 가진 부모의 로망도 순종적이고 여성스러운 현모양처의 며느리였다.


왜 우리는 '기 센 여자'를 기피할까?

“기가 세다”는 표현이 남자에게 사용될 때와 여자에게 사용될 때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 “기 센 남자”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되지 않지만 만약 그런 표현을 쓴다면 그건 그만큼 그 남자가 카리스마 있고 리더쉽이 강한 주관 있는 남자라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반면, “기 센 여자”라는 자기주장이 강해 남자를 리드하고 주눅 들게 하는 드센 여자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기 센 여자”를 기피하는 사회는 그만큼 여자가 자기주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뭔가 하려는 걸 두려워한다. 여자가 우두머리가 되면 깐깐하고 고집스러워 주변인들의 기를 누른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성공하는 혹은 뭔가 자기만의 존재감을 가진 사람은 남자, 여자를 떠나 기가 세고 주관이 확고해야 한다. 자기만의 주관과 고집 없이는 이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고 존재감을 어필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똑같이 성공해도, 남자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만 여자는 억착스럽고 영악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기 센 여자'가 내포하는 성차별적인 의미이다.


사실 나도 머리로는 이걸 알고 있지만, “기 세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그 말에 내포된 우리 사회의 반감을 알기 때문일까? 똑똑하고 자기 주관 확고한 여자가 아닌 '기 센 여자'라는 표현이 가진 공격성 때문일까? (‘기 센 여자'라는 단어에서 주는 어감이 뭔가 똥고집에 자기 맘대로 하려고 그런 느낌이다.)


지금은 헤어진 구남친의 엄마는 

예전에 남자친구에게

“네가 만나는 여자 친구 혹시 기가 세거나 그래?”

물어보셨고

그 친구는

“응 세지~”

“기가 쎄?? 그럼 안되는데..”

“아니 엄마 사회생활하고 그러려면 자기 주관도 가지고 기도 적당히 세야지!”

“아하 그렇지”


그때는 구남친의 “세지”라는 대답에서

순간 ‘아니! 기 세다고 하면 어떡해!

순하다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기 센 여자”를 공격하는 사회에 문제제기를 들면서도 나 스스로 “기 센 여자”로 불리기 싫었던 거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순종적이고 참한 여자로 호감을 사고 싶었다.


사실 나는 순종적 편은 아니고 내 주관이 확실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남자 여자를 떠나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주관 말이다. 내 가방을 대신 들어주려는 남자친구의 손을 거절하고 내 가방은 내가 들려고 고집부리기도 하고, 회사에서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정확히 표현한다. 남자친구라고 의존하고 않고 상사의 지시라도 무조건 순종하기보다 내 논리와 주관을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연약한 여자라고 기대고 싶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내 주관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자립하고 싶다.


사실 편하게 살려고 하면 기대고 의존하고 순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힘든 일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시키는 대로 할 뿐 모든 책임은 지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러나 순종하는 삶은 나를 더 약하게 만들고 내가 의존하는 것들에게 부담을 주어 서로가 더 힘든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매번 모든 짐을 혼자 들어야 하는 남자친구, 다양한 생각을 듣지 못하는 상사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순종하지 않고 주관을 내세우는 것이 기 센 여자라고 한다면 앞으로는 기꺼이 '기 센 여자'가 되려고 한다. '기 센 여자'가 우리 사회를 더 균형 있게 만들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이 '기 센 여자'를 더 사랑할 때까지.


#기센여자 #성차별 #셰릴샌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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