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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an 08. 2020

손절의 미학

끊어내니 더 평화로워졌다.

"그렇게 일하면 한 5백 받냐?"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시급은 되냐?"


야근하고 9시쯤 만난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나름 일 욕심으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남아서 일을 한 날이었다. 마침 그 시간에 볼 일이 끝난 친구와 만났는데 이 친구는 야근한 나를 보면 이런 말을 했다. 그 후에도 몇 번 그 친구 끝날 시간에 맞춰 보느라  일부로 회사에서 남아 일하고 만났는데 저런 말을 하더라. 뻔히 내 월급을 알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만나서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왜 저렇게 비꼬는 거지? 저 말을 듣고 난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불쾌하다.


'아니 지금 백수가 나한테 할 말이야? 맨날 만날 때마다 밥 사주고 우울해하면 기프티콘 보내주는 게 누군데?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나한테 뭐라도 해주고 하는 말인가?'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저렇게 말하고 정작 본인은 나한테 한 푼도 쓰려고 하지 않는 그 모습이 오버랩되어 더 얄밉기도 했다. 처음에는 백수니깐 내가 사는 게 맘 편해서 계산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이제는 아예 결제하려는 생각도 없고 먹고도 얼마 나왔는지 묻지도 않는다. 내가 쓰는 돈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쩌면 백수인 상황을 이해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 사건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친언니, 그리고 나 셋이 고기를 먹으러 갔다. 원래 나와 라볶이를 먹으려다가 내가 오기 전에 친구와 그의 언니가 고기로 메뉴를 바꾸고 이동한 것이다. 뒤늦게 가서 대충 먹고 일어나서 친구의 친언니가 계산하고 셋이 모두 나왔다. 6살 터울 언니기도 하고 고작 3명이서 3만원 남짓 나와서 내가 N빵 하여 돈을 보내주기도 불편했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가는 길에 마트에서 자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사주려던 찰나였다. 사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친구에게 필요한 걸 물어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뒤에서 친구가 갑자기 "언니 얼마 나왔어?" "언니 얼마 나왔어?"를 연신 물었다. '나 들으려는 소리인가?'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트 가서 고른 상품 중 일부를 내 카드로 계산하려는데 친구의 친언니는 "네가 왜 사?"당황한 표정이었고 막상 친구는 아주 당연하단 듯이 다른 상품도 밀어 넣었다.  


어쩌면 그때가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내가 그 친구를 혐오하게 된 계기가 말이다. 그 날 이후 그 친구에게 쓰는 돈과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만나도 맨날 바뀌는 남자 친구 얘기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나를 호구로 생각하는 걸 몸소 느낀 순간 그 친구와의 관계에 회의감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손절을 결심했다.

정말이지 그 친구와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이 오면 달갑지 않았다. 이상한 남자에게 빠져 사리분별 못하는 연애담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동과 말을 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스타 먼저 차단했다.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고 내 소식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았고 카톡을 시니컬하게 단답으로 보냈다. 내 나름의 '손절'이라는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다.


5년 친구를 손절한 후에,

연락이 오면 마음이 무거웠던 친구를 차단하니 평화로워졌다.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날 생각해줬던 지난 고마움이 있어서 관계를 유지할까 싶다가도 이미 마음속에 자라난 불화의 씨앗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지난 5년의 관계보다 앞으로 5년 10년을 바라보았을 때 내 삶에 그 친구가 있으면 내가 스트레스받을 것만 같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에서 내가 싫다고 끊을 수 있는 관계는 오로지 내 사적인 지인들만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 혹은 친구 말이다.) 회사 동료가 마음에 안 든다고 손절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그 친구를 끊어내는 것이 오직 내 선택이고 내 행복인 것이다. 그렇게 분노의 대상과 손절하고 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굳이 나를 홀대하는 사람에게 내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나를 불쾌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멀리 두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구 선생님의 명언이 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고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손절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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