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손절, 그 후에
"혹시 내가 너에게 서운하게 했거나 정 떨어지게 한 게 있어? 인스타 들어가 보니 팔로우가 끊어져 있어서."
최근 손절했던 친구가 지난밤 카톡이 왔다. 나는 이미 손절이라 생각했지만 친구는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라 못 본 척을 할까 아니면 그냥 얼버무리고 대답을 피할까 고민했다. 그만큼 인연을 끊고 싶다는 것을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분 남짓 고민하다가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있는데 친구가 영문도 모른 채 내게 손절을 당하게 두는 게 맘이 편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랑 친구 하면서 상처 받고 힘든 점이 있었어.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 미안해”
끊어진 인스타를 보고도 다시 내게 팔로우를 신청하고 카톡으로 이렇게 연유를 묻는 친구에게 '손절하겠다!' 고하는 마음은 정말 미안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친구는 인연을 끊을 때 끊더라도 어떤 게 힘들었는지 서로 얘기하고 끝내자고 제안했다. 남자 친구와 이별할 때도 왜 서로 이별까지 왔는지 대화하고 헤어져야 진짜 이별이 된다고 말하던 친구였기에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려고 했다. 손절하는 마당에 고이 묵혀둔 내 미움과 분노를 털어놓은들 뭔 소용이 있겠나 싶다가도 먼저 연락을 해 온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그녀의 방식대로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담백하게 내가 상처받은 순간, 내 입장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내 옷을 허락 없이 입었던 그때부터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상처 받았었어"
"옷? 무슨 옷?
"내 네이비 원피스. 입고 인스타에 올렸길래 설마 내 옷 인가 싶었는데 집에 가보니 세탁실에 있어서 내가 가져왔어. 그때부터 회의감이 들었어."
"나 그거 없어서 세탁실 다 찾아다녔는데.. 그 옷 내 옷 아니었어?! 내가 입어보고 내가 더 잘 어울린다고 나 입으라고 한 거 아니었어?"
"그 옷은 다른 원피스야.. 미안한데 그 원피스 준 적 없어. 헷갈린 거 같은데.."
"아 착각했나 봐. 나 진짜 그거 내 꺼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기분 나빴겠다. 근데 나 그렇게 싸구려 탐내고 그러지 않아. 나 질좋고 비싼 옷 많아.. 오해야 그건 정말"
"옷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말없이 입은 행동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실망했던 거지."
사실 이게 오해였다고 해도 이 이후에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 받고 정이 떨어진다고 느낀 순간들은 많았기에 달라질 건 없었다. 다만 그게 오해라고 하니 인간관계에서 앞으로 의문이 가는 상황이 오면 상대에게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오해는 풀렸지만 감정은 더 격앙되었다. 기껏 입어놓고 "니 옷은 싸구려인데 내가 그 옷은 왜 탐내겠어."라는 말은 아주 기가 찼다. 내가 기분이 상했던 요지는 옷이 아까웠던 게 아닌데 말이다. 그 이후에 다른 서운했던 일들을 말하자 그 친구는 다시 본인의 입장을 방어했다.
"그렇게 일하면 한 오백 받냐는 말부터 너 남친이랑 1년 반 안에 결혼 안 하면 차일 거 같다. 는 말들은 상처가 됐었어."
"그건 널 위한 말이었지. 사실 나도 작년 한 해가 내게 너무 힘든 한 해에서 너랑 같이 지내는데 알게 모르게 내 우울한 감정들이 전파된 거 같아."
그렇게 친구는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일도 안 풀리고 연애도 안되고 복합적으로 버거운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론은 최근 남자 친구랑 결혼 준비 중인데 이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가 다시 연락 와서 결혼하자고 하여 어긋난 타이밍에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손절하기 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는데 왜 이전 남자 친구에게 최근 결혼 제안을 받은 걸 말하는 거지? 자랑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번에도 '기승전-남자'인 건가 싶었다.
"네가 자주 바뀌는 남자 친구들에 대한 감정을 내게 털어놓고 그러는 걸 듣는 것도 힘들었어. 나는 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너는 남자가 늘 우선이었던걸 보면서 나랑 다른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가치관부터가 너무 다르다고 느꼈어."
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도 자기도 자기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남자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말하였다. 결국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인연을 마무리하자는 '손절식'은 유혈전으로 번졌다. 그 친구도 내게 상처 받은 순간이 있었고 나를 '본인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얌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내게 분노를 일으켰다. 내가 그 친구를 ‘남자 없이 못 사는 속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알게 모르게 친구한테 표현되었으리라. 그 사이에서 친구도 분노하고 기분 나빴겠지. 서로에게 상처와 분노를 남기는 관계였던 것이다.
서로 친하니깐 허물없이 대한다는 명분 하에 지적질을 한 것이 사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가까웠던 친구를 끊어내는 데에는 친구만의 잘못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말들이 있었을 거고 친구도 그 말에 맞받아쳐 내게 상처를 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친구도 의도치 않게 내게 상처 준 게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굳이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를 꺼내 서로를 떠나보내는 “손절식"이 결국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격앙된 감정을 더해 분노만 야기했다는 것이다.
"내 생일 전날에 만났어도 내 생일날 다른 사람 선물 살 생각하고 생일날 축하인사조차 없어서 서운했어. 나는 니 생일날 선약도 취소하고 선물 사서 2시간 걸려 너의 생일파티에 참석했잖아. 늘 나는 널 챙기는데 너는 날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네가 선물로 준 화장품 내 피부에 안 맞아서 얼굴에 트러블 나서 고생했었어. 또 나 작년에 힘들어서 친언니 생일 10월에 있었는데 그것도 못 챙겼어. 그리고 네가 선약 취소하고 온 건 너 선택이었으니 할 필요가 없는 말이고, 내 생일날 내가 밥도 술도 샀잖아."
"그건 네가 너 친구들 여러 명 모여서 생일 파티한다고 초대해서 간 거고 그 자리에 나도 시간 내서 참석하고 케이크랑 선물 사서 축하해준 거였잖아."
말이 길어질수록 서로 구질구질해지고 감정만 격앙될 뿐이었다. 새삼 이별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감정이 좋으면 왜 인연을 끊겠는가. 안 좋은 감정이 있으니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건데 굳이 그 감정을 구구절절 털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더욱이 감정을 털어놓고 대화해서 풀릴 관계였다면 애초에 '손절'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이런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아 이제.. 차라리 내 생일은 안 챙겨줘서 나도 마음이 더 편해진 것도 있어. 서로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살자. 앞으로 잘 지내고 늘 건강해!"라고 말하면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끝내 차단을 하고 말았다. 손절을 넘어 '단절'을 다짐했다. 반갑지 않고 마음만 불편한 연락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