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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an 17. 2020

유혈전으로 번진 '손절식'

친구와의 손절, 그 후에

"혹시 내가 너에게 서운하게 했거나  떨어지게   있어? 인스타 들어가 보니 팔로우가 끊어져 있어서."


최근 손절했던 친구가 지난밤 카톡이 왔다. 나는 이미 손절이라 생각했지만 친구는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라 못 본 척을 할까 아니면 그냥 얼버무리고 대답을 피할까 고민했다. 그만큼 인연을 끊고 싶다는 것을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분 남짓 고민하다가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있는데 친구가 영문도 모른 채 내게 손절을 당하게 두는 게 맘이 편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랑 친구 하면서 상처 받고 힘든 점이 있었어.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 미안해”


끊어진 인스타를 보고도 다시 내게 팔로우를 신청하고 카톡으로 이렇게 연유를 묻는 친구에게 '손절하겠다!' 고하는 마음은 정말 미안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친구는 인연을 끊을 때 끊더라도 어떤 게 힘들었는지 서로 얘기하고 끝내자고 제안했다. 남자 친구와 이별할 때도 왜 서로 이별까지 왔는지 대화하고 헤어져야 진짜 이별이 된다고 말하던 친구였기에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려고 했다. 손절하는 마당에 고이 묵혀둔 내 미움과 분노를 털어놓은들 뭔 소용이 있겠나 싶다가도 먼저 연락을 해 온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그녀의 방식대로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담백하게 내가 상처받은 순간, 내 입장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내 옷을 허락 없이 입었던 그때부터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상처 받았었어"

"옷? 무슨 옷?

"내 네이비 원피스. 입고 인스타에 올렸길래 설마 내 옷 인가 싶었는데 집에 가보니 세탁실에 있어서 내가 가져왔어. 그때부터 회의감이 들었어."

"나 그거 없어서 세탁실 다 찾아다녔는데.. 그 옷 내 옷 아니었어?! 내가 입어보고 내가 더 잘 어울린다고 나 입으라고 한 거 아니었어?"

"그 옷은 다른 원피스야.. 미안한데 그 원피스 준 적 없어. 헷갈린 거 같은데.."

"아 착각했나 봐. 나 진짜 그거 내 꺼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기분 나빴겠다. 근데 나 그렇게 싸구려 탐내고 그러지 않아. 나 질좋고 비싼 옷 많아.. 오해야 그건 정말"

"옷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말없이 입은 행동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실망했던 거지."


사실 이게 오해였다고 해도 이 이후에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 받고 정이 떨어진다고 느낀 순간들은 많았기에 달라질 건 없었다. 다만 그게 오해라고 하니 인간관계에서 앞으로 의문이 가는 상황이 오면 상대에게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오해는 풀렸지만 감정은 더 격앙되었다. 기껏 입어놓고 "니 옷은 싸구려인데 내가 그 옷은 왜 탐내겠어."라는 말은 아주 기가 찼다. 내가 기분이 상했던 요지는 옷이 아까웠던 게 아닌데 말이다. 그 이후에 다른 서운했던 일들을 말하자 그 친구는 다시 본인의 입장을 방어했다.


"그렇게 일하면 한 오백 받냐는 말부터 너 남친이랑 1년 반 안에 결혼 안 하면 차일 거 같다. 는 말들은 상처가 됐었어."

"그건 널 위한 말이었지. 사실 나도 작년 한 해가 내게 너무 힘든 한 해에서 너랑 같이 지내는데 알게 모르게 내 우울한 감정들이 전파된 거 같아."


그렇게 친구는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일도 안 풀리고 연애도 안되고 복합적으로 버거운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론은 최근 남자 친구랑 결혼 준비 중인데 이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가 다시 연락 와서 결혼하자고 하여 어긋난 타이밍에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손절하기 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는데 왜 이전 남자 친구에게 최근 결혼 제안을 받은 걸 말하는 거지? 자랑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번에도 '기승전-남자'인 건가 싶었다.


"네가 자주 바뀌는 남자 친구들에 대한 감정을 내게 털어놓고 그러는 걸 듣는 것도 힘들었어. 나는 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너는 남자가 늘 우선이었던걸 보면서 나랑 다른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가치관부터가 너무 다르다고 느꼈어."


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도 자기도 자기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남자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말하였다. 결국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인연을 마무리하자는 '손절식'은 유혈전으로 번졌다. 그 친구도 내게 상처 받은 순간이 있었고 나를 '본인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얌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내게 분노를 일으켰다. 내가 그 친구를 ‘남자 없이 못 사는 속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알게 모르게 친구한테 표현되었으리라. 그 사이에서 친구도 분노하고 기분 나빴겠지. 서로에게 상처와 분노를 남기는 관계였던 것이다.


서로 친하니깐 허물없이 대한다는 명분 하에 지적질을 한 것이 사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가까웠던 친구를 끊어내는 데에는 친구만의 잘못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말들이 있었을 거고 친구도 그 말에 맞받아쳐 내게 상처를 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친구도 의도치 않게 내게 상처 준 게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굳이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를 꺼내 서로를 떠나보내는 “손절식"이 결국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격앙된 감정을 더해 분노만 야기했다는 것이다.


"내 생일 전날에 만났어도 내 생일날 다른 사람 선물 살 생각하고 생일날 축하인사조차 없어서 서운했어. 나는 니 생일날 선약도 취소하고 선물 사서 2시간 걸려 너의 생일파티에 참석했잖아. 늘 나는 널 챙기는데 너는 날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네가 선물로 준 화장품 내 피부에 안 맞아서 얼굴에 트러블 나서 고생했었어. 또 나 작년에 힘들어서 친언니 생일 10월에 있었는데 그것도 못 챙겼어. 그리고 네가 선약 취소하고 온 건 너 선택이었으니 할 필요가 없는 말이고, 내 생일날 내가 밥도 술도 샀잖아."

"그건 네가 너 친구들 여러 명 모여서 생일 파티한다고 초대해서 간 거고 그 자리에 나도 시간 내서 참석하고 케이크랑 선물 사서 축하해준 거였잖아."


말이 길어질수록 서로 구질구질해지고 감정만 격앙될 뿐이었다. 새삼 이별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감정이 좋으면 왜 인연을 끊겠는가. 안 좋은 감정이 있으니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건데 굳이 그 감정을 구구절절 털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더욱이 감정을 털어놓고 대화해서 풀릴 관계였다면 애초에 '손절'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이런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아 이제.. 차라리 내 생일은 안 챙겨줘서 나도 마음이 더 편해진 것도 있어. 서로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살자. 앞으로 잘 지내고 늘 건강해!"라고 말하면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끝내 차단을 하고 말았다. 손절을 넘어 '단절'을 다짐했다. 반갑지 않고 마음만 불편한 연락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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