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투명인간이 되었다.

직장인 괴롭힘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by 북극곰

내가 표적이 되어 당한 괴롭힘은 이전 선배들이 받은 것보다 수위가 더 높았다고 자부한다. 적어도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점장님이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메일도 보내지말고 전화도 하지마. 아무것도 하지 ."였는데 정말 내게 아무것도 시킬 수 시키지 않고 투명인간으로 만드실 줄은 몰랐다.


가장 먼저 그녀는 내가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보고드릴 게 있어 지점장님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 말씀을 드려도 절대 내 눈을 쳐다보지 않으셨고 인상을 쓰며 내 말을 들었다. 한 번은 나와 대리와 지점장님 셋이 앉아 얘기를 하는데 그 대화 내내 그녀는 내 눈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대리만 보며 이야기했다. 해당 업무의 실무자는 나였고 조력자가 대리님이었던 상황인지라 해당 대리도 지점장님이 가시고 내게 와서 " 그러시지? 잘못한 있냐?"라며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 같이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내 옆자리는 비우고 내 옆 옆자리에 앉아 가운데 자리가 비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주 유치하고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렇게 투명인간으로 산지 한 달이 지나니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스스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만 보는 사람에게 업무 말고 할 실수나 잘못이 뭐가 있겠나. 아주 솔직한 마음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제가 뭘 잘못한 게 있을까요?"
내가 그녀의 노여움 산 이유가 있다면 알고 용서를 빌거나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속마음을 이전 표적 선배에게 말했다.

"업무적인 걸 넘어 인간적으로 저에게 감정이 있으신 거 같아서 힘들어요."

그러자 선배는 자기도 이게 업무를 넘어 감정이 있는 있는 거 같아서 한 번은 용기 내서 직접 물어봤다는 것이다.

"지점장님 혹시 저에게 감정이 있으신가요?"라고.

그러자 그녀는 아무 감정이 없다. 단지 실적이 맘에 들지 않은 업무적인 불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굳이 물어본다고 해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힌트조차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어 출근을 했다. 이미 표적인 나에게 그녀는 하루에 끝낼 수 없는 과도한 업무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악착같이 일하면 '투명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오전에 일찍 출근하기도 했으니 하루를 온전히 회사에 쏟아부으며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인사조차 받지 않는 그녀에게 살려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고 뭐고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디 오늘 하루는 무사히 넘어가길을 기도했지만 아침부터 자신의 불만을 나에게 쏟아내며 업무 폭탄을 주었다.


"이것 1시까지 해서 보고해주시고

저건 3시까지 해서 보고해줘요."


동료들이 생일이라고 맛있는 점심을 사줬지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먹고 보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정진했다. 그러다가 팀장님이 회의가 있으니 회의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깜짝 서프라이즈가 준비되어 있었다.


생일 케이크와 딸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감사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지점장님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회의실 문 옆에서 삐딱하게 서 있었다.

다들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아예 다른 광고 전화를 친절히 받으시며 외면하고 계셨다.


깜짝 서프라이즈에 대한 감사와 기쁨보다 여전히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처지에 서러움이 더 컸다. 케이크를 자르면서 울음이 터졌고 괴롭힘을 당한 순간들을 봐왔던 동료들은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말로 위로했다. 이내 지점장님도 불편했는지 자리를 뜨셨고 나는 그렇게 깜짝 생일파티에서 엉엉 울면서 그간의 설움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날 11시까지 야근하며 고된 생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의 '투명인간' 벌은 꽤나 오래갔다. 내가 맡은 업무에 선임팀장님을 위에 올리고 성과가 나면 내가 아닌 선임팀장님이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번은 내가 맡은 업무 실적이 우수하여 지점에서 상을 받게 되었는데 "선임팀장님이 수상하세요." 라고 말하며 내 성과를 깡그리 무시했다. 그 이후에 선임팀장님이 못 나오시는 날에는 나보고 '대리수상'하라고 하며 "이건 니께 아니다."라는 무언의 공격을 이어가셨다.


상을 받는 선임팀장님도 본인이 한게 없는 업무에 대해 상을 받아야 하니 머쓱해하셨고 그걸 지켜보는 나도 박탈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일을 해서 성과가 나와도 아무런 존재감도 성취감도 느낄 수 없는 투명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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