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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Nov 18. 2017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다


2014년 여름 아내와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1년에 한번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해외에 나가자는 약속은 했었지만 막상 휴가기간은 다가오는데 정해진 건 없었다. 그 때 이런 면에서 나보다 추진력이 있는 아내가 합리적 가격의 코타키나발루 패키지 여행을 급 찾아냈고,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아내가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병원에서 가져왔다며 책 하나를 꺼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이 책을 만난 게 바로 이 비행기에서 였다.

곤도 마리에 저, 홍성민 역, 더난출판사, 2014


사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그저 그런 정리 책 이려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가 먼저 잠들고, 할 일이 없던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도 흥미롭고, 정리의 기준 또한 신선해서 끝까지 읽어 버렸다.

정리는 수납이 아니라 '버리기' 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설레는 물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과감히 버리자.


이전에도 정리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어 보긴 했지만 이런 정리 기준은 처음 들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객관적이지 못한 정리의 기준을 내세운 것에 놀랐다. 하지만 약간의 검색을 통해 곤도 마리에라는 저자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정리의 대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래도 이 기준을 한번은 적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잊을 수 없는 여름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의 제목처럼 인생이 빛나길 바라며 정리에 돌입했다. 혼자 살 때는 몰랐지만 둘이 살 때는 정리 또한 서로간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깨끗이 하자고 하면서 내 맘대로 함께 사는 공간과 물건을 마구 정리하고 버리고 하면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온전한 내 영역인 내 옷장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책에서 읽은 대로 수납이 아닌 '버리기' 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기준은 당연히 그 옷을 들었을 때 설레느냐? 설레지 않느냐? 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기준이 자칫 우습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옷장을 정리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넘쳐나는 옷들을 처분하기 위해 옷장을 정리하다 보면 1년도 넘게 한번도 안 입었어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옷이 없다. 이건 너무 비싸게 산거라, 이건 친구들이 선물로 사준거라, 이건 내년에는 그래도 한번은 입지 않을까 하는 미련때문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란 기준은 생각보다 많은 옷들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옷을 버리고 있는 나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말이다. 저자인 곤도 마리에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왜 그렇게 유명해졌을까를 알 수 있는 내공이 담긴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설레지 않아서 버린 검정색 가디건을 나중에 필요해서 다시 산 경우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도 미니멀라이프는 여전히 트렌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정리컨설턴트란 직업도 생겼다. 불 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을 넘어, 가슴이 뛰지 않는 물건은 버리라는 주장을 하는 앞의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자랑할 만한 물건을 산 것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버린 물건들의 인증샷을 올리는 것도 유행이 되었다. 이렇게 소유를 버림은, 비움으로 이어지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갈망을 표출해 내고 있다.


결혼 전 혼자 살 때,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져 산 적이 있다. 온라인 상에서 특가를 찾아 ‘어머! 이건 꼭 사야해’ 같은 물건들을 소개하는 사이트 였는데, 이 곳에 소개된 물건들은 정말 특가로 나와 안 사면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한테 지금 당장 필요 하지 않다는 사실은 특가를 찬양하는 뜨거운 댓글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그렇게 1년 정도는 탕진잼 속에 살았다. 매일 택배가 도착했다. 당시에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처럼 택배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옆 건물의 슈퍼와 이야기를 잘해서 택배를 받아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다. 그때 열심히 산 물건들 중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이 얼마나 있을지. 지금 생각나는 건 휴대용 면도기 하나 인 것 같다. 약 1년 여간의 충동구매를 정리하기 위해, 과감히 해당 온라인 사이트의 접속을 끊었다. 일상이었던 사이트와의 결별이 쉽지는 않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여기서도 효과를 보였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 했는지...

 

인생은 버림(비움)의 연속인 것 같다.

버리고 사고 또 버리고 또 사고.

난 그런 면에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꽤나 잘 버리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게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욕심'이다. 이놈의 욕심은 버리고 또 버려도 자꾸 다시 찾아온다. 마치 구 만리 길을 집 찾아오는 진돗개 같다. 욕심이 많아 안 좋은 점 하나가,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 다는 점이다. A도 하고 싶고, B도 하고 싶고, C도, D도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A와 B를 잘 하고 있어도, 현재 못하고 있는 C와 D 때문에 항상 불만이 쌓여있다. 끝없이 소화 하지도 못하는 정보들을 언젠가는 정리할 수 있겠지 라는 욕심에 버리지 못하고 계속 저장해 둔다. 그렇게 1년이 가도 열어보지 못하는 링크가 점점 많아진다.

아직까지는 이 욕심을 버리는 법을 잘 모르겠다. 집 안의 물건 중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하나 둘 내다 버렸던 것처럼, 마음의 욕심도 하나 둘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예 이사를 가야겠다. 욕심이란 진돗개가 집을 다시 찾아오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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