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을 읽고.
책을 빨리 읽는 방법 중 하나를 간략히 소개한다.
책을 읽기 전 미리 '이 책에서 기대하는 바'를 적어두고 읽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스킵 할 수도 있다. 또 다 읽을때 까지 그 대답을 찾지 못했다면 다시 책을 들춰 볼 수 도 있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바는 '저자의 라틴어 수업은 어떻게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까?'라는 질문의 답이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가 직접 책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이럴땐 뭔가 거저 얻은 것 같은 기쁨이 있다. (^^)
라틴어 수업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학생들은 이 강의를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니라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게 느꼈던 겁니다. 강의에서 라틴어뿐만 아니라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비롯해 그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습니다. (책 본문 발췌)
저자가 이야기 한 것 처럼, 라틴어 수업은 단순한 언어 수업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생활방식을 다룬 종합 입문 수업에 가까웠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강력한 스토리텔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술술 풀어냈다. 이해를 돕기위해 저자의 강의를 살짝 맛보러 가보자.
제목 부터 요상한 강의시간이다. 이 수업에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라는 말을 반드시 경험해보라고 이야기 해준다고 했다. 잉? 성교는 내가아는 그거 말하는거 아닌가?? 학생들은 대략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멘붕이 온 이 시점, 이때부터 라틴어 수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느낌을 전하기 위해 책의 일부를 발췌한다)
이 명문은 그리스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 클라우디오스가 한 말입니다. … 그 의미는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오늘날 이 명문을 우리 일상과 접목하면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는 연주자나 가수가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 자, 이 문장의 진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겠죠? 제가 이 문장이 말하는 바를 경험해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우울을 느끼게 되는 위치까지 올라가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계가 여러분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책 본문 발췌)
이런 식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라틴어로 수업을 시작해서 결국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현실에서의 제언으로 끝나는 방식이 라틴어 수업의 방식이었다. 또 한가지의 매력은, 우리가 그간 자주 사용했던 라틴어 단어들이 저자의 강의 시간에 하나둘씩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프로축구단 유벤투스는 젊은이라는 뜻이고, 아베 마리아의 아베는 로마의 인사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즉 아베마리아는 '안녕하세요, 마리아’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강의 시간에 하나둘 이런 것들을 알아가며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라는 탄성이 곳곳에서 들렸을 거라는 건 안봐도 비디오다.
확실한 스토리텔링 능력과 우리에게 낯선 라틴어의 조합이, 이 강의의 맛과 인기를 더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힐링코드 또한 곳곳에 심기어져 있었다. 이 역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하는 건 합리적인 의심 아닐까? 이 책은 보는 리딩 포인트 중 하나는 수록된 많은 라틴어 명문들이다. 그 중 한가지 맘에 와 닿는 문장이 있어 소개하며 책 소개를 마무리 지으려한다.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요 근래 계속, 하고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이 서로 충돌하며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만난 이 문장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라틴어 수업을 들었던 누군가도 나처럼 부딪힌 한 문장으로 설레고, 감동하며 그렇게 또 인생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생 수업’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 작가 약력 : 한동일 -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로타 로마나가 설립된 이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다. 2001년 로마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2003년 교회법학 석사 학위를 최우등으로 수료했으며, 2004년 동대학원에서 교회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고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그의 라틴어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다른 학교 학생과 교수들, 일반 수강생들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등, 서강대학교 최고의 명강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 분야 : 인문교양
■ 책과의 인연 : 작년부터 제목을 많이 듣고 있었는데, 교보문고 전자책 이달의 서적으로 선정되어 읽어보게 됨.
P.S 1. 자세한 내용이 담긴 독서노트는 하단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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