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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Feb 06. 2019

우리 인사만 한 사이지만 점심 같이 드실래요?

오늘도 마음만 먹는 당신에게 『시작노트』

 나는 자타 공인 말이 많은 사람이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이유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많이 하라는 뜻이라는데, 이게 그렇게 어렵다. 말 자체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말하는 동안 들을 수가 없으니 이게 더 문제다. 듣는 힘이 약해질수록 사람들은 그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게 된다. 맨날 본인 얘기만 떠들고 상대방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 누가 대화를 이어가고 싶겠는가? 그렇게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배움은 점점 멀어져간다.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에 듣기를 못하는 것은 꽤나 큰 단점이다. 어떻게 내가 하는 말은 줄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니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방과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식사 시간이다. 또 대화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하루 중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였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일명 점심 투어!

ⓒ Florencia Potter on unsplash.com


 새로운 시도는 거창하지 않아야 하니 과정은 간단하게. 점심 시간을 활용해 다른 사람과 일대일로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이 전부다.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다. 기술 팀 사람, 품질 팀 사람, 구매 팀 사람, 운영 쪽 사람 등. 친분이 두터운 사람에게 점심을 먹자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인사만 하던 사람들에게 점심을 먹자고 요청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여기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생각보다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기뻐하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지레 겁먹어 고민만 하던 시간이 덧없이 느껴질 정도였다.


 점심시간은 누구에게나 1시간 또는 1시간 반 정도가 주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는 주 5일을 반복할 수 있으니 1주일 에 5시간, 한 달만 해도 20시간. 거의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보너스처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보너스 하루를 활용해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점심 투어가 매력적인 이유였다.


 사람들과 점심시간 동안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큰 틀에서 보면 비슷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소소하게 모두 달랐다. 마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말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관점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내 생각 또한 갇혀 있던 박스 사고에서 벗어나 확장되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견고하지는 않더라도 느슨하게나마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살다 보면 이런 식의 약한 관계에서 도움과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상대방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양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계가 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생각지 못한 기회에 노출되는 범위가 크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런 약한 연결은 뜻밖의 기회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도 한다.


 점심 투어의 또 다른 장점은 한 번 점심을 먹은 사람과는 두 번째 티타임을 가지는 게 수월하다는 점. 물론 한 번의 점심을 통해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경험이 될 수 있었다. 점심 투어를 하며 일주일 전에 그다음 주에 만날 사람들과 약속을 잡았다. 대부분 1~2주 전에만 미리 약속을 잡으면 쉽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금요일이 되면 다음 주에는 또 누구랑 점심을 함께 할까 고민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런 만남이 단조로운 직장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았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보면 심리 상담을 하러 온 사람 중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의 주제가 크게 2가지라고 한다. ‘나쁜 사람들’과 ‘불쌍한 나’. 그래서 상담 시간 내내 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느라고 이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공감 되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이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불평 불만은 적당히 하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점심 투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칫 귀중한 대화 시간이 상사와 회사에 대한 불만 성토 대회로 변질되길 원치 않았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짤막하게 마무리하고, 이 환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재미를 찾아갈 것인가를 주로 이야기했다.

ⓒ Ridibooks


 늘 겸손한 L 군과의 점심 식사 중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우리는 월급 이외에 부수입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하며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자칫 월급에 대한 불만족 또는 100세 시대에 너무 이른 정년을 맞아야 하는 사회를 향한 불만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주제였으나,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가령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


 그건 그렇고 점심 투어의 목표 중 하나였던 ‘잘’ 듣기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말을 줄이고 듣는 양이 늘어나진 않았다. 다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노력만으로도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내 이야기를 한 것처럼 깊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L 군과 나눴던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라는 대화 주제는 점심 투어를 하는 내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였는데, 많은 사람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로 오늘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왜 알면도 행동하지 않는가’ 이것은 나 역시 끊임없이 해결해나가고 싶은 문제였고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생각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는 이 신선한 투어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100명 정도는 만나고 점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아직 상상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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