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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Feb 13. 2019

우리는 평생 65,700시간 동안 TV를 본다

오늘도 마음만 먹는 당신에게 『시작노트』

이젠 시쳇말이 되었지만, 한때 TV는 바보상자라 불렸다. 큰 의미에서 동의한다. 물론 유익한 TV 프로그램도 많지만, 일단 TV 앞에 앉는 습관이 들면 다른 것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 오래 자취를 했던 나는, 당시 집에 돌아오면 아무 생각 없이 TV부터 켜는 습관이 있었다. 딱히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 었는데, 일단 TV를 켜면 그날 집에서 하려고 했던 일들은 까맣게 잊은 채 넋 놓고 TV를 보다 잠이 들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내일로 미뤄지고 내일이 되면 후회와 자괴감이 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습관적인 TV 시청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TV를 피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하다. TV를 없애 버리는 거다. 원인을 제공하는 걸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필요할 땐 뉴스도 봐야 하고, 뒤처지지 않으려면 시사 프로그램도 봐야 하고, 주말에 쉴 땐 예능도 봐야 하는데...라는 미련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 TV와의 밀고 당기는 싸움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딱히 누구의 승리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엎치락뒤치락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제법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나자 TV가 자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TV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몸이 편해진 것이다. 이대로 아이를 계속 TV에 맡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문득 불안감이 든다. ‘괜찮을까?’ 


1997년 12월 16일 이른 저녁, 일본에서 어린이들이 집단 발작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증세가 심한 700여 명의 아이들은 병원으로 실려가기까지 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광과민성 발작, 일명 ‘포켓몬 증후군’이다. 당시 국민 만화였던 <포켓몬스터>가 발작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아이들이 붉은색 빛과 파란색 빛이 빠르게 깜빡이는 장면을 TV로 보고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아마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뤄서 나도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한 아이의 부모가 돼서 이 사건을 접하게 되니 그때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문제가 됐던 포켓몬스터 영상. 두 화면이 번갈아 가며 반복됐었다고함.


자극에 반응하는 정도는 어른과 아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다. 어른에게는 딱 좋은 따뜻함이 아이에게는 자지러질 정도로 뜨겁다거나, 어른에게는 살짝 매운 정도가 아이에게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자극이 아이에겐 큰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 소아과학회는 2세 미만 아이의 TV 시청을 금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내가 TV와 오랜 시간 엎치락뒤치락한 이유는 TV의 영향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크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이 3시간 11분이라고 한다. 계산하기 쉽게 하루 3시간으로 하고 60년 정도를 TV를 본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평생 65,700시간 을 TV를 보며 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하루 종일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24시간 TV만 본다고 해도 7년 하고 6개월이나 되는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일을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하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물론 시간만 때운다고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TV를 보는 데 들이는 시간이 무려 65,700시간이라니. 많게는 6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인생 2막에 접어들었을 때 뭘 먹고살 수 있을까를 그렇게 고민하면서, 실제로 그 시기에 나를 먹여 살려줄 무언가를, 그것도 6가지나 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 간을 TV에 쏟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는 멈추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자이자 교수인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TV 시청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이 3배 더 강한 즐거움을 주는데도, 미국 청소년이 운동이나 취미 활동보다 TV에 4배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며 개탄한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면 아이가 장차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 (...) 독일에서의 조사에 의하면 몰입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인 반면, 몰입 경험을 가장 적게 하는 건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 《TV쇼크》 중에서 


시대가 빠르게 변할수록 ‘생각하는 힘’은 중요시되고 있다. 생각하는 힘은 사람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기를 수 있다. 그러니 일방 적으로 전달받기만 하는 TV에 오랜 시간을 들일수록 생각하는 힘이 퇴화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처음 받은 자극이 계속되면 더 이상 자극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느낀 시청자는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이런 시청자를 잡기 위해 TV 콘텐츠들도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막장 드라마만 봐도 자극의 정도를 체감할 수 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TV에서 누군가 의도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TV를 끄면 놀라게 되는 것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집안이 이렇게 조용했구나.’라는 것.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 거실을 지나는 발소리, 베란다 밖 이웃 소리 등 모든 소리가 생경하게 들린다. 또 하나는 시간이 남는다는 것. 여기에 스마트폰도 끈다면 남는 시간은 배가 된다. 시간이 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대로 더욱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오롯이 공백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뭘 좀 해볼까?라는 새로운 시도의 첫걸음이 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재미있어지는 상상에 빠질 수도 있으며, 천천히 나를 생각하게 되는 생산적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TV를 끄니 옆에 있는 아내가 보인다. TV를 볼 때는 아내와 나는 한 곳을 같이 보고 있었지만, TV를 끄면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동안 뭐가 바빠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 처음은 TV를 끄는 것에서 시작했다. 

ⓒ Frank Okay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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