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선을 갖추고 오히려 그 시선을 버린다
언젠가부터 '자기다움'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다움이란 세상 모든 것에 자신만의 시선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내용을 읽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 내용을 이끌어내는 시선(해석)에 관심이 많다. 그 사람 고유의 시선(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커버라는 형식이 인기가 있는 이유도 그 사람이 해석해 내는 노래와 춤, 연주가 궁금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 또한 나만의 시선을 날카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들을 읽기도 하고, 아티스트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도 다니고 있다. 철학 공부도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경험을 수집하기도 한다. 무딘 칼로는 두부도 썰기 어렵다. 즐거히 그러나 부지런히 연마할 생각이다.
여기까지가 그동안의 생각이었다면, 요 근래 들어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되었다. 애써 한 발짝 더 나아갔달까?
영화 <친절한 금자 씨>의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작가의 말이 요즘 들어 더 깊이 공감된다. 어쩌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성장이란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가는 건 아닐런지.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성장이 평범 → 특별이 아니라 그 반대라니. 이것을 앞서 말한 시선으로 이야기해본다면, 나만의 시선을 갖추고 오히려 그 시선을 버리는 것(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이 성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버릴 거 뭐하러 애써 자신만의 시선을 가져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갖고 나서 버리는 것과 처음부터 없었던 상태는 도무지 같을 수가 없다.
나만의 시선을 갖추고 그 시선을 버린다는 걸 달리 말하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기를 힘쓰다 결국에는 자신의 세계를 둘러싼 벽을 허물어 버리는 거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자신의 세계의 확장 없이 손바닥만 한 세상에서 자신의 벽을 허문다면 주변의 것들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넉넉하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벽을 허문다면 조화와 균형, 자유를 얻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생각한다라고만 썼다)
퇴사 이후 마음은 바쁘고 불안은 일상이다.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가볼 생각이다. 느리게 걸을 때에만 비로소 볼 수 있는 풍경을 놓치며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