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음만 먹는 당신에게 『시작노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아마 한 번쯤, 아니 웬만하면 두 번, 세 번 이상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이제는 질릴 지경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그중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몰라 고민만 하다 첫 입사한 직장의 부서에서 8년을 보냈다. 생산기술 엔지니어로서 말이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8년을 했는데 여기서 다른 일을 하면 너무 아깝지 않나?’라는 마음도 들었다. 사실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마음은 불편해지던 날의 연속. 그러다 결국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해보고 싶은 일은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직을 결심했다.
그 후로 구직 관련 앱들을 닥치는 대로 깔고, 이리저리 회사들을 살펴보며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재미있을까를 한참 고민했다. 원하는 분야는 마케팅이나 서비스 기획 쪽이었다. 언젠가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장 트렌드나 기술 트렌드를 살펴보고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하고 예측해 보는 일들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과는 다소 거리 가 있는 일이라 취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현재 일과 하고 싶은 일과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고 있는 취미를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자꾸만 커졌다. 그러나 또다시 고개를 든 현실적인 고민은 지금까지 해온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하면 지난 8년의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연봉은 자연히 감소하게 될 것이고 신입치고 많은 나이도 마음에 걸렸다. 거기에 8개월 된 아이와 육아 휴직 중인 아내까지… 결심을 하고도 한동안 이런 현실적인 고민으로 꽤나 갈팡질팡 했다. 그러던 중 회사 내에서 리테일 사업부의 마케터를 사내에서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
마케팅 팀 팀장과의 인터뷰 후 며칠 뒤 걸려온 합격 전화였다. 예상했던 방향은 아니었기에 다소 얼떨떨했지만 합격 소식에 기뻤다. 무언가에 도전한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뜻밖의 합격 통보도 받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마케터로서 제2의 경력을 시작하게 됐다. 같은 회사였음에도 엔지니어와 마케터의 일은 너무 달랐다. 심지어 기업 문화마저도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해보기 전엔 막연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예전에 한글과 컴퓨터 전 대표 이찬진 님이 회사에서 했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딱 하나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신이 차고 있던 스마트 밴드를 가리키면서 “실제로 써봐야 관점이 생긴다.”라는 말을 했다. 언뜻 당연한 것 같은 그 말로 인해 내 삶의 행동 방식이 꽤나 달라졌다. 그 전에는 남들의 제품 리뷰를 열심히 보면서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아는 척을 했다. 실제로 그 제품을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이찬진 대표님의 말을 듣고 이제는 최대한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고 사용자의 관점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케팅 팀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이 뭐였을까? 팀원들이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UI(User Interface)가 구리다, UX(User eXperience)가 불편하다, 애플은 좋은데 아마존은 이렇게 잘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냐 등등. 더 놀라운 건 이 팀원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거의 사용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설치하면서 설정 화면에서 어떤 단계들을 거치는지 확인해본 적도 없고 실사용은 더더욱 해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자랑스럽게 비교하던 애플 TV나 아마존 Fire TV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허무했다. 그래서는 의견에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직접 사용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길로 차장님과 의기투합해서 팀장님을 설득해 관련 제품들을 모두 구입했다. 회사 제품도 하나 신청해서 집으로 가져가서 설치하고 사용해보았다. 이를 통해 배운 점은 명확했다. 경험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제품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두 가지 경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늘 하던 일만 하면서 내가 좋아할지도 모를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면 이 일 저 일 많이 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사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나를 평생 먹고살게 해 줄 안정된 직장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안정을 추구해도 얼마나 갈지 불확실하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까지 꾸역꾸역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지금도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더 좋아할 만한 일들을 끊임없이 탐험하면서.
“실패했을 때의 대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대가보다 적다.”라는 세스 고딘의 말을 기억하며 시도하고 시도할 것이다. 아마도 좌충우돌하고 많이 실패하겠지만. 내가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겐 가치 없고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시간이 내게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존경하는 김조한 님이 하셨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Life is a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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