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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Sep 19. 2019

왜 문제는 반복될까?

어제 오랜만에 만난 H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H님은 아이 둘을 데리고 2달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 지난주 돌아왔는데, 해외에서는 아이들에게 화도 잘 안 내고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금방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버렸다고 왜 그럴까 고민해 보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며, 한국에서는 내가 왜 그리도 빠르게만 살았을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이제 정말 슬로 라이프를 살겠다고 더 이상 조급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왔는데, 도착한 인천 공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자연스럽게 그 위에서도 빠르게 걸어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Photo by Damian Patkowski on Unsplash


H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그 친구의 아프리카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도 잠시 생각해 봤다. 


왜 자석에 끌리듯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그러다 뜬금없이 남충식 님이 쓴 《기획은 2 형식이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남충식 님은 문제의 정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해결책이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문제라고 정의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적용해 봐도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말도 전했다. 어쩌면 H님이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도, 내 친구가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다니며 빠르게 살아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 문제로 인해 생기는 결과가 아닐까? 이 결과를 해결하려고 애를 써봐도 문제의 정의가 바르지 않기 때문에 곁가지만 잘라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남충식님은 《기획은 2 형식이다》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문제의 정의를 위해서 주어진 시간의 70~80% 이상의 시간을 쓴다고 했다. 그만큼 문제의 정의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고, 이렇게 문제의 정의를 제대로 했다면 사실 해결책은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H님의 문제의 정의는 무엇일까? 내 친구를 빠르게만 살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더불어 내가 요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해결책을 적용해 봤지만 반복되는 문제들이 있다면, 어쩌면 문제의 정의가 잘 못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있나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해보는 게 필요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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