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이 싫은 어느 현대 도련님
형이 결혼하면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형의 여자친구로, 그러니까 누나 동생으로 편하게 지내던 사이가 급격히 멀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색한 호칭 사이에서 서로가 갈피를 못잡는 눈치였죠.
가족이 함께 형 집으로 집들이를 간 어느 날, 결국 저는 어색함을 참지못한 채 호칭을 공식적으로 파기해줄것을 호소했고, 그 후로 지금은 도련님이 아닌 제 이름 두 자로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명절만 되면 우리는 역할극을 벌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고, 호칭이 서로 어색한 사이는 호칭을 빼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죠. 앞 말을 얼버무린 채로 조심스럽게 말을 뱉고 삼킵니다.
선대가 만들어온 문화는 중요하지만, 오래고 지난 관행들은 이젠 조금은 바꾸고 버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상투를 한 도련님, 그리고 턱수염이 길게 아래로 뻗은 서방님. 그리고 긴 머리를 길게 말아올린 채 비녀를 꽂은 아가씨가 아니기에, 현대는 현대의 삶에 맞는 이름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패미니스트도 아니고, 반 패미니스트도 아닙니다. 그저 도련님이 싫은 도련님일 뿐입니다. 최근 정부에서 호칭개선안을 조사하고 진행중입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며, 모두의 명절이 앞으로 더 편해지면 좋겠습니다. 제사 문제도, 호칭 문제도.
2019. 02. 04
도련님이 싫은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