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베스트문장 5
내가 읽은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와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딱 두 권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을 펼친 건,
순수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작가에 대한,
아니 그가 글을 써내려가는 방식에 대한 궁금증.
이 책은 장르가 모호하다.
산문과 시, 날짜를 단 일기 형식의 글들이 교차한다.
서점에서는 ‘에세이’로 분류했지만,
나는 이 책을 하나의 매거진,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여름호라 부르고 싶다.
문학이라는 잡지가 있다면,
그 첫 번째 특집은 아마 이 책이었을 것이다.
흐름은 뚜렷하다.
소설 집필 후기에서 시작해,
시와 산문을 지나,
정원일기로 향한다.
김수영 시인은 말했다.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
하지만 한강의 글은,
온몸을 넘어 온 생애로 쓰여 있다.
혼자 써야 하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어둡고 고요한 전투.
그 흔적이 책장마다 남아 있었다.
정원일기 파트에선
읽으며 조금은 멈칫하게 됐다.
짧은 문단들 사이에 내 생각을 투영하는 게 어려웠고,
‘정원 가꾸기’라는 소재는
나에겐 다소 거리감있게 느껴졌다.
아마 작가를 오래 지켜보지 않은 독자라면,
후반부의 호흡이 낯설고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치 마블 영화를 전혀 모르고
시리즈 중간을 보는 것처럼.)
그럼에도 조용한 페이지 속에서
나는 작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작가는 빛을 고루 퍼뜨리기 위해
거울을 이용해 정원 곳곳에 햇빛을 반사시킨다.
나무가 한쪽 면만 쬔다면 건강히 자랄 수 없듯,
사람도 세상의 한 방향만 받아들이고선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원은 ‘나’였고,
빛은 ‘세계’였으며,
그 빛을 조율하는 그의 손길은
글을 쓰는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결국 세계에 닿는 한 사람.
『빛과 실』은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이 여름의 문학적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