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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Sep 21. 2017

일곱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 김영하의 오직두사람.

북리뷰 : 오직두사람 / 김영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뇌, 선택의 딜레마, 내면 깊은곳의 이기심,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만족감 등등..김영하는 이번 책에서 그런 복합적 감정을 지닌 인간에 관한 고찰을 담았다.


소설의 날씨는 전반적으로 흐리고 어둡지만, 소설이 마냥 어둠으로 짙게 깔린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흥미진진하다. 햇볕아래 주인공 모습과 그늘에 가려진 그림자를 계속해서 추론해보는 재미와 극중 주인공 심리속에 나를 투영해보고 재미가 함께 공존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말을 하려 했을까? 나는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며 읽었던 이번 책. 삶이 무료한 당신에게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본 리뷰는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파장

책, '오직 두 사람'은 총 일곱 편의 단편이 함께 엮인 단편소설집이다. 이 유형의 책은 대부분 책에 실린 단편소설 한 편이 표지 제목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 김중혁 작가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 그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책의 전체적인 리뷰를 함에 앞서서 이번 글에서는 표지 제목으로 선정된 단편 '오직 두 사람'에 관하여 먼저 얘기해보려 한다. (이 소설에서만 따로 다뤄야 할 내용이 있기에.)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주인공 현주가 자신이 알고 있는 친한언니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글로 써서 전달하는 독특한 전달 방식이다.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오빠와 여동생, 엄마 그리고 아빠와 함께 부유하게 자라왔으나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내 두 사람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인공의 불행은 시작된다. (이 내용은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동생과 엄마는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오빠와 자신 그리고 아빠는 국내에 머무르게 되며 가족이 찢어져 살게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오빠는 근무지가 집과 떨어져 있었기에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주인공은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가족이란 존재가 한 사람, 그리고 그 구성원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가족이 떠난 후 망가진 아빠. 아빠를 가족으로 취급하지 않는 동생의 이기심, 가족에 무관심한 오빠, 남편에게서 딸을 떼어놓으려는 엄마. 그리고 비관적으로 변한 주인공 자신까지.

가족이란 울타리는 거친 세상으로부터 나를 감싸주고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안식처다. 물론 혼자서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의해) 살아간다. 그게 자녀가 되었든, 배우자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우린 가족이라는 구성원에 의지하고 또 의지 받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에 나를 투영해보곤 했다. 가족에게 소홀했던, 무신경했던, 막 대했던 내 지난날의 행동들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 한편을 다 읽고 나니 괜스레 가족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고, 나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색한 안부를 건네곤 했다. 밥은 먹었냐며, 쉬는 날은 언제냐며.


언니라는 존재는 OO이 아닐까?

소설 '오직 두 사람'을 읽고 나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그건 바로 주인공의 얘기를 전달받는 '언니'의 존재다. 주인공에겐 친 언니가 없었고, 이야기 전개로 보았을 때 사이가 좋아 보였던 언니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친한 언니에게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언니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주인공이 말하는 언니가 주인공의 '아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작가가 별뜻 없이 언니를 이야기 속에 투입시켰을 수도 있지만, 나는 계속해서 작가가 처음 적었던 문장들이 신경 쓰이곤 했다. 그 첫 문장은 이러했다.

"언니는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스탈린 치하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 수십 명 중 하나예요. 뉴욕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언니네가 전부예요. 고향에서는 러시아어가 표준어가 되었고, 언니네 언어는 이미 소멸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와요. (중략).. 둘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들일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 날 이 둘,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해요. 그러곤 수십 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요" - 오직 두 사람 본문中

여기서 말한 러시아어에서는 어쩐지 차가움이 느껴졌다. 작가가 추운 러시아의 날씨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향은 주인공의 집(가정)을 뜻하는 듯 했다. 차가운 말들만이 오고가는 삭막한 집을 말이다. 반면 소멸된 언어는 가족끼리 나눴던 따뜻한 옛 대화를 말하는 것 같았고, 둘만이 유일하게 나누었다는 '언어'는 부녀 간의 따뜻했던 대화를 의미하는 듯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아빠와 외국 여행을 단둘이서 떠난 적이 있었는데, 언니의 이야기 배경이 뉴욕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여행지에서 아빠와의 사소한 세대 차이, 생각 차이를 연쇄적으로 겪게 되고, 결국 여행을 다녀온 후 더이상 아빠와 예전 같지 않은 사이로 지내게 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언니의 이야기 역시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하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주인공이 외국을 떠날 당시의 나이는 열아홉이였고, 아빠가 돌아가실 즈음에 주인공 나이는 사십 대였다. 주인공이 들려준 언니의 이야기 속에는, 언니는 의절한 사람과 수십 년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했고 그러다 한 사람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죽은 사람이 언니인지, 또 다른 사람인지는 이야기 속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다는 점인데, 그렇게 언니의 이야기는 급작스레 종결된다.

그래서 나는, 언니라는 존재는 주인공의 '아빠'라고 추측되었고, 언니와 의절한 대상은 '주인공 본인'일 것이라 추측되었다. 그리고 이 추측은 뒤 내용에서 한 번 더 힘을 받게 되는 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우리 아빠는 수술실에서 이미 죽었는데요. 주말마다 같이 영화를 보고,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제 몸의 단점을 가장 잘 가려줄 수 있는 패션에 대해 여자친구처럼 수다를 떨고 때로는 아예 쇼핑까지 함께 나서던, 젊고 자신만만하던 그 사람은 어디 갔을까요?" -오직 두 사람 본문中

주인공에게는 아마 두 명의 아빠가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한 명은 어린 시절 자신과 애틋하게 지냈던 자상하고 멋진 아빠. 한 명은 가족들이 떠나고 망가진 삶을 살고 있는 타락한 아빠로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말하는 '언니'는 여자친구처럼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줬던 전자의 아빠가 되고,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망가진 후자의 아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추측대로라면, 친한 언니 같았던 아빠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못한 주인공은 힘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옛 아빠에게 위로를 구할 메일을 쓰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 메일은 결국 부치지 못할 내용이 될 것이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제3자는 안타까움을 애써 감춰야만 한다. (어쩌면 주인공의 모습이 여전히 어른아이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그러나, 언니가 꼭 아빠가 아닐지라도 내용의 결과는 크게 바뀜이 없다. 아빠 없이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어색함과 공허함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니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주인공의 상황을 통해, 내 가족의 미소와 행복을 한번 돌이켜보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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