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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Nov 08. 2017

가을날 펼치기 좋은 세 편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언어의 온도

보통의 존재 /  이석원

                                                                                                                                                                                                                                                                                                 

어른이되면  자동으로 훈이나 철이처럼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여전히 석원이일 뿐이었어.

- '보통의존재' 본문중에서.


어렸을때 학교에서 누구나 장래희망을 적어본 기억이 있을것이다.

이 장래희망은 유치원때부터 초중고까지 꾸준히 적곤 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케일이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었을때는 현실의 울타리안에서의 꿈을 찾게된다. 나 역시 학창시절 장엄했던 꿈은 사회인이 되면서 그 너비와 높이가 많이 좁아지고 낮아졌다. 그리고 책 본문글처럼 나는 그냥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본 영화 주인공인 톰크루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무대 위가 아닌 그 밖의 관객석 삶이라고 할까. 아직 철이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내 삶을.


작가는 본문 중 이런 얘기를 했다. 꼭 무대 위 배우가 될 필요는 없다. 그냥 관객이 되어도 된다고.

사실 관객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루하루 힘겹게 삶과 고군분투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 평범한 관객석에 앉지도 못한다. 알고보면 관객이 되는 거조차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우선 관객이 먼저 되는 게 목표다. 그다음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이다. 크지 않아도 된다. 작은 무대라도 난 한번 서보고 싶다. 짧은 인생을 삶에 있어 어떠한 분야의 무대에 한번 서보는 것. 그런 목표 하나쯤은 있어야 더 행복하지 않을까. 마치 로또복권을 사고 난 후 당첨도 되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상상에 젖는 것처럼.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 김민준


                                                  

타인으로 인하여 사사건건 마음이 흔들리는 너는 너무 예쁜 꽃이 아니던가. 모든 꽃은 옅은 바람에도 나부낀다. 그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니 흔들리는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빛에도 굴절이 있고 소리에도 왜곡이 있다. 무릇, 모든 소중한 것들은 가벼운 빗소리에도 여간 잠들지 못하는 법이다. 지고지순, 이를 데 없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중에서   


                                                                       

청춘의 삶, 고난 그리고 사랑을 담은 한 편의 산문집. 작가가 낱장에 올려놓은 활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글을 읽어가는 도중 마치 내 얘기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고, 같은 아픔과 시련을 마주한 과거의 경험을 다시 들춰보기도 했다. 글을 읽고 있으니 문득 호숫가에 비친 달빛의 모습이 연상되곤 했다. 작가의 문체는 고요하고 은은하지만 뿜어내는 표현들은 청명했다. 


이 책의 작가는 나체였다. 자신이 겪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책에 담고 있었다. 나를 맨몸으로 책에 넣는 것.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옛사랑의 아픈 추억을 담아낸다는 건 더더욱.


작가는 말했다. 감정을 다채롭게 꺼낼 수 있는 건 작가의 능력이자 함정인 것이라고. 글을 쓰는 같은 입장에 서있어서인 지 모르지만, 작가의 말은 내 뼛속으로 절절히 스며들었다. 맞아. 다채로운 감정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누군가와의 관계를 금가게 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하지. 작가는 아마 하루하루를 고독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거야. 그리고 그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기도 하고.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작가는 얘기했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고.
그의 말처럼 어떤 특정한 음식은 특정한 기억을 연상시킨다. 또 특정 음악 역시 특정 기억을 불러온다. 잊고 지냈던 노래를 듣다 문득. 한동안 먹지 않았던 음식 냄새를 맡다 문득. 혹은 늘 즐겨듣는 노래나 좋아하는 음식 속에서 등등.. 어떤 음식과 노래들은 문득문득 그 어떤 누군가를, 그 어떤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건 그 사람의 온도이기도 했고, 그때의 내 온도이기도 했고, 그날의 온도이기도 했다. 그리운 기억이란 어쩌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다시 그때와 똑같을 수 없기에, 내 머릿속에 그리운 잔향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 '언어의 온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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