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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Jan 21. 2018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 박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본문中》

책은 작가가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별한 이, 이별한 이, 그리고 짧게 삶의 어깨를 맞닿은 이 등등.

작가는 그들을 떠나보내고 독주를 했다. 그 독주가 투명한 술잔 앞이기도 했고, 흰 바탕의 공책 앞이기도 했으며, 때론 정처 없이 떠난 여행지 앞이기도 했다.

그만이 가진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문체는, 읽는 이에게 슬픔을 온전히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나도 그만 슬픔에 잠겨버렸다.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모양의 슬픈 기억들을 꺼내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본문中》

작가는 혼자만의 여행을 즐겼다. 그는 국내여행을 할 때면 주로 남쪽을 향해 내려오곤 했는데, 삭막한 도심에 살아온 그가 지방의 여유로움과 고유의 색을 그리워하는 것에 연신 공감이 갔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향긋한 바람을 맞이하는 여유로움. 그 여유로움을 찾아 떠난 자리에서 작가는 무리 속에서 받아온 외로운 감정들을 고독으로 희석했다. 그리고 때론 그 고독이 그간 외면했던 이들을 만나게끔 만들기도 했다. 혼자만의 여행을 줄곧 떠나온 나였기에, 이 또한 작가의 마음과 다름이 없었다. 

책 후반에 들어서선 과거 시점이 아닌, 현재 시점에서 쓰인 글이 자주 보였다. 온전하게 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경제적 현실에 관한 내용에서 큰 동질감을 느꼈던 건 아무래도 내 상황이 그와 다르지 않음을 알려주는 근거였다. 그럼에도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며 현재의 시를 써가는 작가의 모습이 새삼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그는 시를 짓는 일이 마치 유서를 쓰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책 끝자락에 찍힌 마침표에서 책장의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먼 훗날, 언제일지 모를 어느 즈음, 그가 마침내 운명하는 날이 될 때면, 분명 그가 남겨온 이 유서들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귀감을 준, 향긋한 향기를 안겨준, 옛 향수를 불러오게 한 좋은 기록장이 되어 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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