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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Jan 05. 2018

용의자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이 책은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사람과 가짜를 밝혀내려는 사람. 누가 더 어려운 위치에 서있을까요? 책 ‘용의자 x의 헌신’은 두 천재의 치열한 두뇌 공방전이 일어나는 추리 스릴러입니다.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이러합니다.

한 모녀가 살인을 저지릅니다. 살인의 대상은 모녀를 억누르고 괴롭히던 ‘야스코’(극 중 아이 엄마)의 전 남편이었습니다. 계획된 살인이 아니었기에 당황한 모녀는 그 모습을 옆집에 거주하던 수학천재 ‘이시가미’에게 들키고 맙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시가미는 모녀를 돕습니다. 완벽한 살인, 은폐를 말이지요. 이야기는 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완벽한 계산으로 모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냅니다. 그 덕에 사건의 전개는 그의 계산대로 순탄히 흘러갔고, 모녀는 수사망의 타깃에서 점점 벗어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시가미의 오랜 벗인 ‘유가와 마나부’가 등장하며 새로이 진행됩니다.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는 이시가미의 행동에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 순간부터 이시가미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시가미 역시 유가와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간파하게 되고,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며 그를 수면 아래로 끌고 갑니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 언급하려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 용의자 x의 헌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존재합니다. 그건 바로 독자가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악행을 저지른 모녀와 이시가미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평을 쓰는 저 조차 바로 윗글에서 ‘다행히’라는 표현을 썼으니까요. 그게 이 책이 제공하는 최대의 딜레마일겁니다. 응원해선 안 되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 말이지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봐야 할 점은, 이시가미와 모녀는 엄연한 남남 관계라는 점입니다. 연인 사이도 아니었고, 이사 온 지 오래되지 않아 서로 간의 큰 정을 쌓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시가미는 뛰어들어선 안 될 일에 주도자가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바로 모녀가 이시가미에겐 생명의 은인이자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가끔 영화나 소설을 볼 때면, 타인을 위해 맹목적으로 희생하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희생하는 이유는 어떠한 큰 빚을 갚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베푼 사소한 관심과 정에 이끌려 희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들을 보며 느꼈습니다. 어떠한 사소함은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보통 누군가 죽거나, 악행을 저지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 인간의 선함을 표현하려 애쓴 흔적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을 은폐한 주인공들은 분명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나 극 중에 드러난 그들의 나약함과 현실은 동정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난해해지는, 그러나 한없이 빠져드는.
그게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그만의 아이덴티티이자 마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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