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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Dec 26. 201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어느 따뜻한 우유통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편

                                                      

소설의 이야기는 좀도둑으로 추정되는 세 청년이 어느 폐가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폐가는 과거 잡화점으로 운영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낡은 상가였다. 쇼타, 고헤이, 아쓰야 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들은 그곳에서 우연히 편지 한 통을 전달받게 되는데, 그 편지는 놀랍게도 그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세계로부터 날아든 편지였다.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게이고가 이제는 판타지 소설까지 써낸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며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편지에는 고민 상담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주인공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고민을 편지로 받아온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곳이었다.

나야미(なやみ), 일본어로 고민-걱정이라는 뜻이다. 해당 단어와 간판명이 흡사했던 잡화점은 우연한 계기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고, 그게 오랜 시간 거쳐 아주 먼 미래까지 전달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는 현재는 이미 잡화점의 주인공 나미야 유지가 사망한 후의 시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잡화점에는 편지가 이어졌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서툰 조언이지만 진심을 담아 그들에게 답장을 보낸다. (이후 줄거리는 내용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각설하려 합니다. 궁금한 분은 소설을 읽어보길 권장합니다.)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답장은 우유 상자에> 중에서.

누군가에게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종종 생겨난다. 그러나 상대에게 어떤 명시적인 답을 얻어내고자 함은 아니었던 듯하다. 사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대한 확신과 격려를 바란 적이 더 많았다. 소설에 등장한 사연, 주인공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답을 필요로 한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스스로 정해놓은 길이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편지를 써서 조언을 구했다. 확신을 얻기 위해서, 내 길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때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그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고, 그들에게 느껴진 애잔함 때문인 지, 아님 동질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고민과 상황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 장 한 장을 넘겨보았다. 그리고 그 말로가 행복이 되었을 땐 마치 내 일인 것 마냥 빙그레 윗니를 드러내곤 했다.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꼭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중에서.

소설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쓰로’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흔히 요즘 말로 인디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녹록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그를 포기로 이끌어갔다. 나는 유독 이 청년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 주고받은 편지의 문장들이 절절히 와닿았다. 내 상황과 비슷해서였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된다는 말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부여잡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분명 나와 같이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사연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이야기를 관찰할 것이다. 45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그 읽어나감에 거리낌이 없었다. 체감은 200페이지 정도의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흡수력이 뛰어났고,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스토리 전개 방식과 옮긴이의 디테일한 필체가 좋았다.

출간된 지 햇수로 6년을 넘긴 책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소설은 가까운 달(18년 1월 31일)에 영화로 다시 독자들에게 찾아올 예정이다. 판타지 요소가 다분한 책을 어떤 식으로 구현해낼지 기대가 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읽었을 책이지만, 아직 읽지 않은 이가 있다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먼저 읽어보길 바란다. 어쩌면 이 속에 당신의 사연이 실려있는 지도 모르니.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하늘 위해서 기도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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