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지켜주는 사람들

건강하지 않을 때 우린 최소한의 행복을 갈망한다.

by 천성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종합병원.

이따금씩 버스를 타고 병원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그 병원의 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일반적인 병원과 달리 이 병원은 조금 특이한 이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지켜 주는 사람들.’

병원 간판에 적힌 문구다. 분명 해당 병원은 본래의 이름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을 내걸지 않았다. 혹시 그들은 진작에 알았던 것일까? 그들이 지켜 주고 있는 것은, 아니 지켜 주고 싶은 것은 단지 신체적 건강이 아닌 행복 그 자체라는 사실을.



건강은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한다

가을볕이 본격적으로 짙어지기 몇 달 전의 일이다. 늘 어딘가 엉성하게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줄곧 내 옆을 지켜 준 절친한 친구 녀석으로부터 늦은 저녁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직장을 얻으면서부터 떨어져 지낸 우리는 이따금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 전화를 한두 통씩 주고받곤 했는데,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친구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아주 낮게 깔려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도 그 음산한 분위기가 전해 올 정도로 우울한 목소리였다. 불길한 예감을 누르며 감기라도 걸렸냐는 둥 시시한 농담을 건네는 나에게, 녀석은 수화기 너머로 한참을 머뭇거리다 힘겹게 입을 뗐다.


“성호야, 나 암이란다.”


...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느낌일까.

나는 “진짜?”, “장난이지?”라는 말을 수없이 내뱉으며 현실을 부인하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정말 암이었다. 병명은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흔히 림프암으로 불리는 질병이었다. 편도선이 이상하리 만큼 부어올라 병원에 갔다가 정밀 검사 결과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은 1기였고, 진행 초기라 완치율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에게 “그래도 다행이다. 걱정 마, 괜찮아질 거야.” 같은 시답잖은 위로를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조만간 올라갈게.”라는 말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질병은 '인생'이라 불리는 우리의 영화를 멈추게 한다.

마치 영화가 ‘일시정지’ 된 기분이었다. 질병은 잘 상영되고 있는 우리의 인생 영화를 한순간에 멈추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필름을 아예 잘라내 버리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이어 볼 수 없도록, 영원히 복원할 수 없도록…….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의 필름은 빠르게 잘도 돌아갔고, 친구가 암 선고를 받은 그날부터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현재 친구 녀석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영락없는 암환자의 모습이다. 벌써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마쳤고, 이제 마지막 항암만을 앞둔 상태라고 한다. 1기여서 오랜 항암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었다. 우려와 달리 치료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덕분에 요즘 나는 녀석에게 습관처럼 이런 말을 자주 내뱉곤 한다.


다행이라고. 그만하길 정말 다행인 거라고.


...

건강은 최소한의 행복이다. 최소한이기에 모두가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고, 보통 큰 병을 맞았을 때에야 그동안 최소한의 행복을 누려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건강에 소홀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무너지는 것이 건강이기에, 보통은 붕괴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건강은 단시간에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만큼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 몸의 건강이든, 혹은 마음의 건강이든.


어제는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모자를 사러 갔다. 다 빠진 머리 위에 무슨 멋을 부리려 하는지는 몰라도, 이 모자 저 모자 써 보며 어떠냐고 묻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녀석이 정말 다 나아 가는 모양인가 보다. 나는 씩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거지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