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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May 11. 2023

적자생존 틀렸다. 우자생존이다.

도서읽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왠지 경쟁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다.

책을 소개하는 표지 띠에 적혀있는 ‘적자생존은 틀렸다’는 선언도 눈길을 끌었다.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도발적인 문구에 반응을 했을 것이다. 공감 혹은 반감으로 말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제목과 소개 글이 결론이기에 책을 읽지 않아도 결론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결론이 어떤 과정과 근거를 통해서 합리적으로 도출되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보편적인 인식으로 간주되는 적자생존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선언은 지동설의 주장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이 과연 설득적일까?

이 책은 단지 진화론적인 사례와 논의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심리학, 인류학, 동물학, 생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연구결과를 토대로 거대한 이야기를 끌고 갔다.

단적인 예로 진화론에 주로 등장하는 유인원뿐 아니라, 여우, 개, 보노보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했다. 이들은 가축화 과정을 통해 인간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친화력이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임을 입증했다.


이러한 입증은 평생을 한 가지 주제, 하나의 대상에 쏟아부었던 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연구가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공헌을 했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연구들이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잊지 않았고, 자신들이 대서사적 이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주요한 고리와 단서로 하나씩 제대로 활용했다. 마치 저자의 저서가 거대한 목걸이라면, 선대의 잊힌 연구자들의 노력과 삶들은 각각 훌륭한 구슬들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매우 중요한 개념 몇 가지를 만나게 된다. 손짓, 친화력, 자제력, 자기가축화, 불쾌한 골짜기, 비인간화 등이다. 이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던 것이다. 어떤 것이 작용하면 그와 동시에 반작용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에게 없는 사피엔스의 친화력은 가족과 이웃 간 연대감을 만들었다. 몇 백명의 사피엔스가 협력하고 합심하여 행동했다. 기대한 결과로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사피엔스의 친화력은 가족과 이웃이 아닌 그 외의 존재(다른 인종, 동물)에 대해 비인간화시키는 경향을 드러냈다.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인종은 연대감이 아닌 적대감의 대상이고, 폭력적 행위를 정당하게 구사했다.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었다.  

저자의 표현이 단적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책의 끝부분으로 가면, 저자가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친화력은 비인간화를 만들고, 비인간화된 집단과 개인에게 무자비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인종, 종교, 민족, 국가 간 갈등 상황에서 비인간화에 따른 대량살상(genocide)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저자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 방법을 여러 가지 실험 속에서 마침내 찾았다.

결국 친화력과 비인간화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므로, 이를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인간은 다양한 인종, 종교, 민족을 접하는 기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학교의 실험적 환경이 인위적일지라도, 저자는 학생들이 인종, 종교, 민족 등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친화력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했다. 인간은 친화력이 형성되는 기회를 갖는다면, 비인간화의 발생은 자연적으로 억제가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다양한 문화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대담론의 붕괴 이후 미시담론 상황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작은 갈등이 너무도 많은 세상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폭넓은 친화력을 국가, 사회, 개인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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