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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Mar 06. 2023

멈추어라, 순간이여!

전시읽기: 회화전 Andre Brasilier

포스터가 전시회장으로 발을 이끌었다. 누구에게나 붙잡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삶의 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멈추어라, 순간이여!’는 내면에 깊은 울림을 만들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을 가득 채운 푸른 빛과 분홍 빛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보는 순간 작가와 그의 작품에 빠져들기 충분했다.

아직 생존해있는 90대의 노작가는 2022년에도 신작을 그렸다. 젊은 시절에 피카소, 달리, 샤갈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교류한 살아있는 전설같은 사람이다.

이미 젊은 시절에 뛰어난 미술학도였지만, 중년이 넘어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자신의 화풍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의 화풍은 파랑, 분홍, 노랑 등의 색상을 단조로운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어지만, 원색보다 파스텔 느낌에 가까웠다. 한 가지 색상이 아닌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무수한 파랑색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파랑이었다. 분홍도 노랑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파랑은 자연, 분홍은 여인, 노랑은 예술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각각의 색상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이미지가 주는 느낌은 그의 작품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우선, 자연을 담고 있는 파랑이 너무도 좋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차가울 수 있는 파랑에서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나무를 파랗게 채색한 그림은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초록과 갈색으로 정형화된 나무를 하얗게 그린 작가들은 있었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역일수록 하얀 색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란 색으로 표현한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흔히 푸른 숲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한다. 그 때의 '푸른'이란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만들어 낸 연두와 초록의 넓고 깊은 공간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무 자체가 푸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앙드레는 한국의 관용적 표현을 글자 그대로 그려낸 것 같았다. 유럽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숲을 진짜 푸르게 그렸을 때 느껴지는 공간에 대한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처럼 표현의 색다름은 그가 한 말을 통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있었다면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은 분홍, 그에게 분홍은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사랑을 진한 분홍색으로 은유하는 표현방식은 다소 쉽고 상투적인 공식처럼 보였다. 만일 화가가 아주 젊은 나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식적 개념과 색감의 연결이 유치할 수 있지만, 90세가 넘은 화가의 그림에서는 그 유치함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육신은 늙었어도 그가 간직한 사랑은 청춘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같았다.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사랑처럼 말이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마음 속의 감정을 분홍빛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작품 속에 모델로 등장하는 아내도 당시 90세에 이른 여인이었다.

그에게 아내 샹탈 브라질리에(Chantal Brasilier)는 이상형과 정확히 일치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이상형의 여인을 작품에 그리고 있을 무렵, 샹탈을 만났는데 한 눈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경험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그녀를 그렸다”


아내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붓 끝에 그녀를 담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전시장 출구에 있는 글과 스케치는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지혜처럼 삶을 살고 싶다.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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