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이름은 하나의 신화와 같습니다. 전쟁터를 누빈 영웅, 쿠바의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 사나이,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20세기 문학의 거인. 우리는 그의 소설을 통해 그를 만나왔지만, 그 단단한 문장 뒤에 숨은 진짜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의 말"은 바로 그 신화의 장막을 걷고, 작가 헤밍웨이의 내면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입니다.
여러 매체와 나눈 그의 인터뷰 기록들은, 박제된 위인이 아닌 뜨거운 피가 흐르는 한 인간의 육성을 생생하게 복원해 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작가와의 인터뷰를 엮은 책을 참 좋아합니다. 작가의 철학과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그는 글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설계도를 펼쳐 보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빙산 이론’이 그 시작입니다. 작가는 아는 것의 8분의 1만 드러내야 합니다. 나머지는 수면 아래에 잠겨 있어야 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부분이 글에 무게와 깊이를 부여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면 글은 매력을 잃는다고. 사랑에 빠졌을 때 최고의 글이 나오지만, 그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성. 헤밍웨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가치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에서 글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상상력은 경험이라는 단단한 땅 위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진실한 허구를 창조합니다. 그에게 작가는 ‘우물’과도 같았습니다. 한 번에 모든 물을 퍼내 우물을 말려서는 안 됩니다.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일정한 양만큼만 길어 올려야 합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문장을 서른아홉 번이나 고쳐 썼다는 일화는, 천재의 번뜩임이 아니라 성실한 장인의 땀방울이 그의 문학을 만들었음을 보여줍니다.
헤밍웨이의 삶은 곧 그의 문학의 재료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잃어버린 세대’라 불렸던 파리의 청춘, 스페인 내전의 비극, 그리고 쿠바의 태양 아래에서의 삶. 이 모든 경험이 그의 문장에 녹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고통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1954년의 비행기 사고는 그의 육신을 망가뜨렸지만, 그는 오히려 그 고통이 자신의 글쓰기를 향상시켰다고 믿었습니다. 육체의 한계가 상상력을 더 깊고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고백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상처를 입으면서 써야 한다고, 좋은 글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의 손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환희와 죽음의 공포, 그 양극단의 체험이 그의 예술을 지탱한 두 개의 기둥이었습니다.
그는 동시대 작가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숨기지 않습니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에즈라 파운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인정하면서도,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긋습니다. 명성을 위해, 혹은 정치적 편견을 위해 쓰이는 글을 경멸했습니다. 작가에게는 ‘헛소리 감지기’가 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 수많은 정보와 가짜 서사 속에서 글을 쓰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경고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인터뷰 모음집이라는 형식적 한계입니다. 다양한 시점의 질문과 답변이 엮이다 보니, 때로는 파편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잘 짜인 전기처럼 서사적인 흐름을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생각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문장들은, 잘 정리된 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라는 거대한 배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책입니다. 그가 써낸 소설이라는 화려한 갑판 아래에서, 어떻게 그토록 강력하고 정직한 문장들이 만들어졌는지 그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읽고 쓰는 모든 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문장은 얼마나 진실한가. 헤밍웨이는 떠났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