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공간이 이런 모습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매일 도시의 거리를 걷습니다. 무심코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자동차로 가득 찬 도로를 건넙니다. 이 익숙한 풍경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서울에서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고, 런던에서 5년간 건축가로 살았던 전보림 작가는 "익숙한 건축의 이유"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공간의 익숙함을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작가가 다른 도시에서의 삶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이 책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를 향한 애정 어린 아쉬움에서 출발합니다. 저자의 시선은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아닌, 우리의 발이 땅에 닿는 그 지점에 머뭅니다.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 설계된 넓은 도로, 건물의 1층을 잠식해 버린 주차장, 보행자를 위협하는 골목길. 책은 이 모든 것이 도시의 효율성을 높였을지는 몰라도, 그 안을 걷는 사람의 경험과 감각을 지워버렸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런던에서의 경험을 거울삼아 서울의 모습을 비춥니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이 미덕인 서울과, 기존의 것을 보존하고 고쳐 쓰는 ‘재생’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쌓아가는 런던. 이 대비는 단순히 두 도시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용적률과 효율성의 논리에 잠식당해 획일적인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린 우리의 도시에, 시간의 흔적이 곧 도시의 개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작가의 시선은 거실, 주방, 화장실, 발코니처럼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향합니다. 손님을 맞기 위한 보여주기식 거실이 아닌, 가족의 소통을 위한 ‘대청마루’ 같은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효율만을 위해 고립된 주방이 아닌, 가족과 교류하는 마당 같은 주방을 상상합니다. 발코니 확장이 과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 묻습니다. 작가의 시선은 건축이 결국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책은 서울의 문제점과 런던의 장점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때로는 그 이분법적 구도가 한국적 특수성과 역사적 맥락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 여지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완벽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 질문을 시작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인문 교양서로써, 내가 사는 동네가, 내가 사는 집이 왜 이런 모습인지 궁금했던 분들, 더 나은 도시를 꿈꾸는 분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매일 걷던 그 거리를, 무심코 지나치던 아파트를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