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일1책

신의 돌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 "먼저 온 미래"

먼저 온 미래를 겪어낸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

by readingdaily


9788962626605.jpg


기자의 눈, 소설가의 마음


장강명 작가는 11년간 기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언제나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습니다. 사회의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현상의 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려 합니다. 저자는 여러 문학상을 휩쓴 뛰어난 소설가입니다. 그의 문장은 건조한 사실 너머의 인간적인 고뇌를 섬세하게 길어 올립니다. 이 책 "먼저 온 미래"는 저자의 이 두 가지 정체성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책이라 할 만합니다. 꽤나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저자는 알파고 쇼크 이후 바둑계가 겪은 혼돈과 변화를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꼼꼼하게 취재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느꼈을 법한 상실감, 경외,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소설가의 마음으로 그려냅니다.



먼저 미래를 맞이한 바둑계


책은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점령한 세계인 '바둑'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알파고의 등장은 바둑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인간의 직관과 수천 년간 쌓아온 정석은 '새로운 신'이 던지는 이해할 수 없는 수 앞에서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바둑 기사들은 충격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세돌 9단은 ‘아름다운 건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한마디에는 인간의 예술과 기풍이 기계의 효율성 앞에서 빛을 잃는 것에 대한 쓸쓸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곧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AI의 기보를 연구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 기사들의 기량은 상향 평준화되었습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체재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AI의 수를 따라 하며, 소위 기풍을 잃어버린 바둑이 과연 예전과 같은 바둑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뜨거운 감성이 사라지고 차가운 지성만 남은 게임이 된 것은 아닐까.



오웰과 창작의 본질


바둑계에서 눈을 돌려, 저자는 시선을 예술과 창작의 영역으로 넓혀 갑니다. 생성형 AI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시대. '인간 창의성'의 의미는 뿌리부터 흔들립니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직업적 운명, ‘인간 소설가의 종(種) 보존’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 고민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토로합니다.


이 대목에서 조지 오웰이라는 거장이 어른거립니다. 작가는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인용하며, 우리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기술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어느새 인간이 기술의 속도에 맞춰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게 당연 시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린 감시와 통제의 디스토피아는 이미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술은 우리를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자유와 인간성을 침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영역에 주어진 급작스럽고도 강력한 도구에 대해, 우리가 심사숙고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읽어봐야 할 이유


이 책은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현상을 다각도로 보여주지만,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자의 의도는 이미 도착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고,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토론해야 하는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미래는 이미 여기에 와 있다'는 긴급한 메시지를 우리 손에 쥐여주는 것 말입니다. 이 책은 더 거세게 몰아치는 AI라는 파도 앞에서, 이 파도를 직시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능동적으로 답을 찾아가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증오의 역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