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차가운 메스
우리는 증오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그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이자 오스트리아 신범죄학회 학술 자문위원장인 라인하르트 할러는 증오의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증오는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40년간 500명이 넘는 살인범을 프로파일링하고 수천 시간의 임상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차가운 지성과 날카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할러는 증오의 민낯을 해부합니다. 그가 이 책, "증오의 역습"을 쓴 이유는 단 하나, 그 자신이 증오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증오가 허공에서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뿌리에는 거의 언제나 '나르시시즘적 모욕감'과 '자기혐오의 투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훼손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상처는 분노를 넘어 증오의 불씨가 됩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자기혐오를 타인에게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불편한 우리 내면의 작동 방식을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책이 제시하는 사례들은 증오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잠식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생긴 작은 흉터 하나 때문에 수십 년간 자기 자신을 혐오하다 삶이 무너진 여성. 부모의 편애 속에서 자라 동생을 살해하려 한 형의 이야기는 증오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처 입은 영혼에 의한 비극입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싹튼 증오가 더욱 섬뜩해지는 것은 그것이 집단과 이념을 만났을 때입니다. 저자는 독일에서 터키 이민자들을 겨냥해 연쇄 살인을 저지른 극우 테러 단체 NSU 사건이나, 여성에게 거부당한 것에 대한 증오로 총기 난사를 벌인 ‘인셀(Incel)’ 커뮤니티의 사례를 통해 증오가 어떻게 사회적 광기로 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광기의 핵심에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라는 섬뜩한 심리 기제가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기생충'이라 불렀던 것처럼, 특정 집단에서 인간성을 제거하고 벌레나 해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어떤 잔혹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현대의 '네트워크 증오'는 이 비인간화 과정을 극적으로 가속화합니다.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그 과정을 촬영해 올린 10대 커플, 할머니 살해 영상을 공유한 소년의 사례는 충격을 넘어 우리에게 거대한 고민거리를 던져 줍니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서, 증오는 죄책감 없이 전염되고 괴물처럼 자라납니다. 이 책이 파헤치는 것은 단순히 끔찍한 범죄 사건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내면에 잠재된 파괴의 가능성입니다.
할러 교수는 절망적인 진단에서 멈추지 않고 명확한 처방전 제시를 시도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개인적인 증오 극복 10단계'인 '증오에 이름 붙이기'부터 시작해 '상대의 입장 헤아리기', '공격성을 건설적으로 활용하기'를 거쳐 '용서하기'에 이르는 과정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입니다. 특히 '공격성을 건설적으로 활용하라'는 제안은 프로이트의 '승화(sublimation)'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파괴적인 에너지를 스포츠나 예술 같은 창조적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성숙한 방어기제이자 증오를 다스리는 지혜임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해법 역시 날카롭습니다. 저자는 증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디지털 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규제,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 능력의 회복을 강조합니다. 공감은 비인간화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한, 우리는 그를 쉽게 미워할 수 없습니다.
나치 수용소 생존자 잉에 아우어바허의 이야기는 이 책이 전하는 희망의 증거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증오하려고 살아남지 않았다.' 증오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의 고백 앞에서, 우리는 증오라는 어두운 열정을 이겨낼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들이 때로는 너무나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변화가 맞물려야 하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 무력감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을 시작합니다. 거대한 변화는 문제를 직시하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증오'를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둡고 무거운 책이기에 선뜻 꺼내 읽기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개인 간의 증오범죄나 전쟁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르완다에서 한 달 만에 80만 명이 학살당한 비극을 상기시키며, 증오를 방치했을 때 어떤 파국이 오는지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증오는 의외로 우리와 가까이 있습니다. 익명의 댓글 뒤에 숨어 날 선 말을 내뱉어 본 사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맹렬히 비난해 본 사람, 이유 없는 미움에 사로잡혀 본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세상은 미움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증오를 이길 수 있다고. 그 파괴의 연쇄를 끊어낼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