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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품위에 관한 기록,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일터에서의 품위 그리고 정신적 자유에 대하여

by readin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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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완료, 그리고 시작되는 한 인간의 기록


우리는 쉽게 주문하고, 당연하게 물건을 받습니다. 문 앞에 놓인 상자. 그 상자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상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여기, 그 여정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 남자가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후안옌. 인문계 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하고 20년간 열 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했던 사람. 그가 마지막으로 뛰어든 곳은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중국의 택배 산업이었습니다.


이 책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는 저자가 북경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며 써 내려간 2년간의 기록입니다. 중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려나가고, 9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16개국에 판권이 팔렸습니다. "올해 단 한 권의 에세이를 골라야 한다면 이 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죠. 평범한 택배기사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그 이유는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명확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직업에 대한 르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택배 산업은 "중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바꿔 말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급성장하는 경제의 눈부신 불빛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하루 18시간, 65km를 달려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 배송 건수에 따라 결정되는 수입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벌점 제도. 때로는 하인처럼 취급하는 고객들의 싸늘한 시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손.


작가는 미사여구 없이,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늘어놓습니다. 밤마다 쑤시는 몸을 부여잡고 울었던 날들, 시스템 오류로 발생한 100원 남짓한 배송비를 두고 고객과 벌여야 했던 소모적인 실랑이, 수습생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부당한 처우까지. 그의 문장은 날것 그대로라 더 아프게 파고듭니다.



계약서에는 없는 자유를 꿈꾸기


저자는 고된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기술하는데만 멈추지 않습니다. 책의 부제는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입니다. 저자는 가장 비루하고 힘겨운 노동의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가장 존엄한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을 옥죄는 시스템 속에서도 결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왜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가.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신은 언제나 계약 조건 이상의 자유를 꿈꾼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이 문장에 책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육체는 고된 노동과 시스템에 속박되어 있지만, 그의 정신만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토였던 셈입니다. 그는 동료 기사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고객의 친절 속에서, 그리고 홀로 수많은 골목을 누비는 시간 속에서 흩어진 사유의 조각들을 그러모읍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그 조각들을 단단한 품위로 빚어냅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창작이 아니라 '개인적인 기록'이자,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미학적 품질'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후안옌을 보통의 노동자와는 다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과거의 원망과 불만을 해소하고, 한때 느꼈던 '완벽한 무의미' 속에서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길어 올립니다. 책의 성공으로 전업 작가가 되어 경제적,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된 그의 서사 자체가,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깊은 영감과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단상들을 엮은 것이기에, 중국 택배 산업 전반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파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자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개인에게 깊숙이 천착하며,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집중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담론 대신 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시대의 본질을 더 날카롭게 꿰뚫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비단 중국의 택배기사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플랫폼 노동, 비정규직, 감정 노동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 시대 모든 노동자의 초상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생계와 존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만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후안옌의 기록을 계기로 우리도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클릭하는 '주문 완료' 버튼 뒤에는 어떤 삶의 숨결이 오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의 일터에서 나는 어떤 품위를 지키며 어떤 자유를 꿈꾸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묵직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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