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기술이 아닌 태도
수많은 어른과 카메라가 지켜보는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희 아빠가 요즘 힘들어하시는데, 힘들어하는 40대 남성의 증상 중 중학생이 알아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순간 장내는 숙연해졌고, 몇몇 어른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복잡한 정책이나 날카로운 비판이 오가던 자리에 던져진 이 순수한 질문 하나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마음을 흔든 것입니다.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이 얼마나 강력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20년간 마이크 앞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김혜민 작가의 새 책, "좋은 질문의 힘"은 바로 이런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자 탐구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는가’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질문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얻고, 닫혔던 관계의 문을 열며,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집중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는 저자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던 날의 일화는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처음에 무심코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지만 이내 깨닫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이 질문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그는 유족들이 자주 쓰던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에 기대어 다시 묻습니다. 이 작은 변화는 상대의 고통에 발을 맞추려는 공감의 태도 그 자체였습니다.
때로는 질문 하나가 우리의 예상을 산산조각 내며 새로운 차원의 이해로 이끌기도 합니다. 저자가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다루며 오랫동안 관련 활동을 해온 전문가에게 '왜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일화가 그렇습니다. 저자는 원인에 대한 분석적인 답변을 예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한 인간의 고통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말이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자면, 차라리 내 자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거예요.' 이 답변은 '자살의 원인'을 설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참담했으면, 그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이었는지를 듣는 이의 가슴에 못처럼 박아버린 것입니다. 좋은 질문이 단지 이성적인 답을 구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진 안전한 거리와 편견을 어떻게 부수고 문제의 본질적인 아픔에 가닿게 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질문의 힘은 비단 무거운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에게 한 등장인물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대해 물었을 때, 작가는 이렇게 답합니다. '드라마를 찍고 인물에 몰입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어요.' 이 대답을 통해 저자와 독자는 이야기의 표면 아래 숨겨진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게 됩니다. 좋은 질문은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다리가 되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 ‘영 케어러’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저자는 개인의 고통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질문을 통해 개인의 서사를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확장시킵니다. '이건 제도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 질문은 한 사람을 피해자로 남게 하는 대신,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AI가 척척 답을 내놓는 시대. 우리는 어쩌면 질문하는 법을 점점 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빨리 정답을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답은 기계가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질문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우리는 인생이 우리가 찾아낸 ‘정답’들로 평가받는다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깊이는, 그가 찾아낸 정답이 아니라 던졌던 ‘질문’들의 총합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관점 변화가, 당신의 모든 것을 바꿀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