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일1책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접시 위에 피어난 한 사람의 우주

by readin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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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토막 영상으로 보았던 최강록 셰프의 소탈한 웃음을 기억합니다. 냉장고의 평범한 재료로 한순간에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던 마법 같은 손길에 익숙합니다. 이 책은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고요한 새벽 4시의 주방에서 시작되는 한 요리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방송의 환호가 아닌, 식재료의 숨소리와 칼의 미세한 떨림만이 존재하는 치열하고도 경건하기까지 한 세계입니다.


책은 '생선은 50년'이라는 일본인 스승의 한마디에서 시작합니다. 하나의 기술을 완벽히 익히는데 반세기가 걸린다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장인의 길. 저자는 이 길 위에서 보낸 자신의 시간을 담담히 풀어놓습니다. 새벽 수산시장의 비린내, 뜨거운 불 앞에서 땀 흘리는 고통, 끝없는 설거지의 고됨. 그는 이러한 과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요리의 본질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한 그릇의 요리가 수만 번의 칼질과 수천 번의 온도 조절, 그리고 수십 년의 인내가 응축된 결과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주방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철학을 실천하는 실험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육수를 '데이터를 뽑아내는 과정'에 비유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맛의 변수를 통제하고 최적의 값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과학자의 탐구와 닮았습니다. 재료 준비 단계를 식당 운영의 60%라고 단언하며, 보이지 않는 준비가 요리의 완성도를 결정한다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이는 비단 요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화려한 결과물 이전에 얼마나 견고한 준비와 과정이 필요한지를 되묻게 합니다.


이 책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요리를 통해 삶의 의미와 관계를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음식은 '치유의 기억'입니다. 가난했던 유학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돈가스 한 조각의 따스함. 그는 이제 자신의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그 사랑을 이어갑니다. 음식이란 이처럼 세대를 이어 흐르는 기억의 매개체이자, 가장 따뜻한 형태의 소통임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요리사의 삶에 존재하는 명과 암, 기쁨과 고뇌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 책은 '요리를 한다는 것'이 곧 '삶을 살아낸다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의 분야에 깊이 뿌리내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며,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는 여정. 그리고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 저자는 100년 후에도 자신의 요리가 이어지길 꿈꿉니다. 그것은 음식을 넘어,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철학과 진심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일 것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 주변의 모든 음식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동네 식당의 백반 한 그릇에도 한 사람의 인생과 철학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이 책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새로운 영감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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