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by. 백상현
미술이라는 실천은 이러한 장막을 뚫고 출현하는 유령이미지들에 관련된 실천이어야 한다. (본문 중)
이미지와 영상물이 흘러넘치는 세상이다. 이것들은 분명 삶에 즐거움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게 만듦으로써 우리의 판단을 흐리기도 한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예술을 라캉의 철학에 빗대어 설명하며, 미술의 실천이 거세된 이미지가 아니라 유령이미지를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세된 이미지란 문명과 상징 아래 목적과 의미를 뚜렷하게 드러낸 이미지를 뜻하며, 이와 반대로 유령 이미지는 세상에서 규정한 모든 문명과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이미지를 뜻한다.
전자는 명확한 메시지와 안정감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선호를 받는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뚜렷할수록 감상자들은 스스로 해석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서 사유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은 애매하고 불편할지라도 직접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후자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사고가 단편적이며 일률적으로 변하는 것은 의도가 강렬한 이미지와 영상물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보이는 대로만 믿고 판단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보이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겸비해야 함을 주장한다.
의미 없음의 의미.
신속함과 효율성이 가장 큰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의미와 결론을 명확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평가 절하하며 답답해하는 일이 당연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은 이미지와 영상물을 볼 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자신의 판단은 뒤로 젖혀둔 채, 그들 속에 담긴 주장이 마치 나의 주장인 양 받들어 모시는 일도 너무나 자연스러워지고 말았다.
정보와 이미지들에 실시간 노출됨으로써 그만큼 자신이 채워지고 있다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들은 전부 내가 아닌, 타인의 의미이자 메시지들일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미가 명확한 이미지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떠올리며, 의미 없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의미가 명확지 않은 것은 답답하다. 하지만 의미가 없어야지만 스스로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이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덮고 있던 타인의 소음과 목소리가 거둬지고, 나의 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되새기며, 모호함과 애매함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길,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며 자신으로 꽉 채워진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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