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들

[밤으로의 긴 여로] by. 유진 오닐

by 북구리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본문 중)














여름 별장에 모인 한 가족. 얼핏 보기엔 일반적인 가정과 별 다를 바 없지만, 곧 이들의 숨겨진 아픔과 상처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출산 후유증으로 마약에 빠진 어머니 메리. 한때 연극배우로 유명했지만 돈에 대한 집착으로 한없이 인색해진 아버지 제임스. 동생에 대한 질투와 인생에 대한 비관으로 술과 유흥에 빠진 맏아들 제이미. 악화된 폐병으로 허무주의에 빠진 막내아들 에드먼드. 이들 앞을 가로막는 불행의 그림자는 서로를 향한 연민과 비난의 화살이 되어 온전한 사랑도, 증오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저자 유진 오닐의 실제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희곡이다. 그에게 가족은 끊임없는 비난과 불화로 깊은 상처와 절망을 남긴 존재였다. 그럼에도 오닐은 자신의 말년에 회고하듯 이 작품을 기록했다. 집필 중간 구토 증세를 보일만큼 고통스러운 가정사였지만, 그는 끝내 이 희곡을 완성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가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애쓴 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결심, 그리고 용서의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운명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들


가족은 운명의 공동체일까 아니면 사랑의 공동체일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은 분명 운명 공동체이다. 부모는 사랑에 의해 가족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자식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해서 운명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기에 사랑이 되는 것일까. 이 또한 자식의 입장에선 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주어진 운명이기에 평생토록 이해와 노력을 동반하여 사랑해야만 한다.


이 희곡을 쓴 오닐도 그들의 자식이었다는 점. 그리고 자식을 향해 주어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어머니 메리였다는 점은, 자식에게 가족이란 곧 운명 공동체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고통스러운 심리적 압박 속에서도 작품을 통해 가족을 이해하고 용서하려 했던 이는 결국 자식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가족을 향한 자식의 사랑은 때때로 부모의 사랑보다 더 처절해 보인다. 그들에게 가족은 사랑이 있기도 전에 운명으로 시작한 공동체이니까. 그래서 사랑만이 그들을 지속 가능케 하니까.


이 희곡을 집필하는 오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다.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두려웠을까. 운명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의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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