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스킬1_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 쓰기
육아의 과정에서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생각보다 수시로, 엄마의 심장을 향해 깊숙히 날아와 꼽히는 혼자만의 갈등이 있다.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
갓난 아이를 품어 안고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로, 스스로 자기 삶을 찾아갈 수 있는 성인으로 키워가는 시간은 길고 지난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고,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는 감정 조절이 제멋대로인 아이와 치열하게 갈등하며 정신적 소진을 겪는다. 육체적으로 다 자란 나이가 되어도 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스스로 자립하기까지는 수많은 충돌을 겪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쑥불쑥 불거지는 질문이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이다. 뇌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성애는 임신과정에서 생기는 호르몬 변화의 영향이라고도 하고,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던 우리는 아이들 키우며 치솟는 분노, 수치심, 자괴감과 싸워야 한다. 맘대로 안 되는 아이를 보며 화를 내고, 다른 집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며 수치심에 빠지기도 한다. 쌓아왔던 노력이 허무하다고 느끼며 자신의 능력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런 감정에 빠지다 보면 마지막엔 '죄책감'이란 늪에 이르게 이르게 된다. '나는 내 사랑스런 아이를 보며 왜 이다지도 유치한 감정들에 휘둘리는 걸까?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 모성애도 없나 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의 둘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나섰다. 홍콩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아이는 별안간 과민성 방광 증상을 보였다. 패키지 여행이었지만, 내 아이 때문에 버스는 수시로 멈춰야 했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민망하고 미안한 상황이 이어졌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나는 극도로 예민해졌고, 스스로 아이를 향한 걱정보다는 부끄러움에 쌓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이 유치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가면을 썼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스스로도 민망해 하는 아이를 도닥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연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는 새벽부터 복통을 호소했고, 아이의 작은 위에 쏟아놓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구토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다시 깨달았다. '숨겨지지 않았구나. 고스란히 나의 감정이 아이에게로 갔구나. 힘들었구나. 너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답지 않은 엄마에게서 스며드는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까. 아이는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먹으면 쏟아내고, 먹으면 쏟아내는 시간을 반복했다. 그 시간 내내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되뇌이며 속으로 울었다. 마음을 다해, 온 몸을 다해 아이를 보듬었다.
아픈 아이를 챙기느라 우리 가족은 패키지를 포기하고 하루 일찍 귀국 길에 올랐다. 남편은 아이가 아프다며미친듯이 표를 구하고 다녔고, 간신히 타고 갈 비행기를 구한 우리 가족은 공항에서 꽤 긴시간 대기를 해야 했다. 대기 시간을 보내며 이번엔 큰 아이까지 아팠다. 관심이 온통 작은 아이에게 가니 본능적으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이유없이 열이 치솟았다. 아픈 두 아이를 안고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엄마의 사랑을 있는 힘껏 보여주었다. '왜 니 녀석까지 아프냐!' , '대체 넌 언제까지 토할 거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면 눌러내리고, 예쁘고 고운 말만 하며 아이들을 도닥였다. 아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에 도착한 즉시, 거짓말 같이 다 나았다. 잘 먹고, 잘 잤다.
나는 이 날을 오늘까지 '육아 치욕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 민낯의 나와 부딪혔던 날, 가장 엄마답지 못했던 날, 살면서 이런 일을 또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날. 하지만 나의 내면은 그 이후로도 자주 엄마답지 못했고, 자주 천박하고 부족한 나였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성애로 무장한 엄마는 없었다.
엄마가 너희를 기르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때가 있었다고, 너희에게 상처가 되었을 그 날을 아직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이는 그게 언제냐고, 그런 날은 없다고, 엄마는 우리에게 완벽했다고 말했다. 미친듯이 뒤집어 쓴 가면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공개되는 순간, 다 자라 성인이 된 내 아이는 '그랬구나. 엄마가 말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그날이었구나.'할 것이다. 20년 전 공항 바닥에 구토물을 쏟아내던 내 딸은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고, 아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자기 가정을 꾸렸다. 이제는 물어보고 싶다. 솔직히 그날, 엄마의 치욕이 날이 너희에게는 어떤 날이었냐고. 미안하고 힘들었던 그 날, 엄마는 참 미숙했다고 말하고 싶다.
부끄러워서 차마 꺼내지 못하고 이십 년 넘게 감추어 온 그날의 내 가면을 이제는 열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모성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가면이 위장이 아니라 노력임을 알기에, 나를 사로잡고 휘둘렀던 수많은 육아 중 갈등 상황에서도 치열했던 그 날의 기억이 나를 붙들어주었음을 알기에. 그날은 언제나 내게 엄마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가면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모성애에 연연할 것 없다. 다만 아이에게 들키지 말기를. '나를 너를 온전히 사랑한다.' 말하고 말하며 스스로 엄마로 자라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