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잠을 위해 나의 잠을 주노라
숙면을 방해하는 온갖 것들이 밤을 밝히는 세상이다.
퇴근시간이면 어김없이 불러대는 술친구들, 출근과 퇴근의 틈바구니에서 미뤄두었던 온갖 자질구레한 의무들, 자정이 넘어도 꺼지지 않고 더 환하게 빛나는 거리의 네온사인들, 그리고 그 빛나는 곳에 즐거움들, 언제나 딱 달라 붙어서 밝은 섬광을 뿜어대는 스마트폰은 물론이요, 정주행해야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들까지! 우리의 밤은 낮보다 더 분주하다.
늦게 자도 잘 일어나고 해야할 일을 어김없이 해치우는 나에게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잠이 없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원래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다. 숱하게 세웠던 밤들이 나를 훈련시켰던 것 같다. 나의 잠들지 못하는 밤은 숱한 밤의 유혹 그 어느 것도 아닌, 육아의 시간이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열성 경기를 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었던 시간, 떨어지지 않는 열을 내리기 위해 밤새워 아이들 닦이고 약을 먹였던 시간, 아이의 시험기간이면 함께 공부하며 지샜던 시간, 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꾸벅이던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음, 엄마는 말이야. 잠이 없다거나 안 피곤한 건 아니고, 잘 버티는 것 같아. 버티는 것도 연습이거든. 엄마는 엄마가 되면서 버팀을 훈련했던 것 같아. 아마도 너 역시 엄마가 되면 잘 안 자도 잘 버티게 될 걸. 하하하."
아무 걱정도 없이 잠들 수 있는 아가의 밤을 지키기 위해 엄마는 엄마의 잠을 포기한다. 까짓 잠보다 수만 배 소중한 아이를 위해 기꺼이 밤을 새운다.
아이들은 몸이 아프면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때로 착해지기도 한다. 어느 날 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위해 밤을 새워 미지근한 수건으로 닦이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반짝이는 눈을 뜨고 천사의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아파서 미안해. 엄마 잠 못 자게 해서 미안해."
엄마는 이런 순간에 백만볼트 에너지를 얻는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밤으로 세겨진다.
언제쯤 알람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죽은 듯 자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밤을 숱하게 지내고 이제 맘껏 자자 할 때쯤에 갱년기가 와버렸다. 자꾸 깬다. 누가 깨우지도 않는데.......
괜찮다. 쪽잠을 자도 너를 위해 나의 잠을 포기한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니, 지금 나의 쪽잠마져도 아.름.답.다.
얼마전 딸이 많이 아팠다. 열이 40도로 치솟으며, 해열제를 먹여도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다 큰 딸이었지만, 어릴 때처럼 지켜보며 밤을 지샜다. 열이 겨우 떨어지고 잠이 드는 딸을 보며 그날의 착한아가를 생각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딸 역시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너의 잠을 위해 나의 잠을 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