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로 결심하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들이 가장 설레는 날은 스무살이 되는 날 밤이다. 법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그 순간이 오면 주민등록증을 자랑스럽게 들고 미리 검색해놓은 술집으로 향한다.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의식이라도 하듯,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술잔을 열심히 기울인다. 그렇게 열심히 술잔을 기울이고 나면, 소개팅도 하고, 썸타기도 하며 어른이 되었음을 즐긴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참 뒤, 수많은 부서짐과 깨어짐 뒤에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지 숫자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통과해야할 수많은 통과의례 중에 몇 몇을 간추릴 수는 있겠다. TV 육아 프로그램에서 부모는 숨어서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를 혼자 심부름을 보낸다던지, 혼자 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혼자' 해내는 것이 어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그리고 다음은 '사춘기 슬기롭게 보내기' 정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부모님과 많이 싸우며 의견 조율을 배우고, 친구를 지독히 의지해보기도 하고 배신도 당해보며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은 '연애'다. 열렬히 한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감정의 컨트롤을 배운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얼마나 쓰디쓴지도 배운다. 다음은 '돈 벌기'. 내 손으로 번 돈으로 나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데 이 모든 관문에서 최고 난이도의 관문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하기'이다. 내 한 몸 책임지기도 버거운 세상인데,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같이하려고 하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거기다 더해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우고 어른이 되기까지 책임지기로 결심하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미친 짓 같다. 뭣도 몰라야 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 제목을 빌려 말하면 '육아는 미쳐야 하는 짓이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겁없이 도전했다가 큰 코가 다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이 일에 도전한다. 엄마가 되기로 하고, 아빠가 되기로 한다. 왜 그러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른 선언'이다. 이제껏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했던 관문은 그저 시간이 지나며 응당 가야했던 길이라면 아이를 낳고 기르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의 용기로, 나의 사랑으로 어른이 되기로 선언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굉장히 뿌듯하고, 멋지고, 감동적이고, 아무튼 그 어떤 순간보다도 다채롭고 풍요로운 감성과 경험을 맛보는 일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면 어떤 철학자도 박사도 공부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선언은 결혼한지 3년이 지난 어느 날인가에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숨을 이어 받고, 나의 살과 피를 거름삼아 새싹을 틔우는 숭고한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가도 이 땅에 또 다른 나로 남을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찼다. 계획하고 선언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소중한 씨앗을 심고 키워낼 설렘으로 나의 몸을 준비하고, 기다림의 시간을 기도로 채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감을 갖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꺼이 하나의 또다른 생명을 이 땅에 단단히 세우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사랑을 온전히 쏟아부을 아이의 손을 잡은 것.
나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 손을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다 자란 어른이 되면 기꺼이 너른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인사하는 것.
그 무거운 나의 소명은 1997년 5월 어느 날 시작되었다.
2.7kg 작고 소중했던 나의 아들. 반가웠다.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