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육아 중입니다. 지금도 깊어지는 중입니다.

묵은 육아 일기를 시작하며

by 최혜정


내년 2월에 아들이 결혼을 합니다.

육아일기를 쓰기는 너무 늦은 나이일까요?

무슨 말로 이 힘들고 행복했던 시간, 지치고 감동적이었던 시간, 그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표현할지 아주 오래 고민하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 기르고……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누군가 내게 이 모든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냐고 물으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행복했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또 그 중 으뜸은 육아의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만큼요.

“나도 엄마는 처음이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만큼, 아이들 키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 부모가 된 이들은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 실수의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가게 되니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의 주인공이 금쪽이가 아니라 부모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문제 아이가 아니라 문제 부모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아이를 낳기 전에 의무적으로 부모 교육도 하고, 부모 자격 시험도 치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육아는 무겁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 글의 시작은 딸 아이의 한 마디였습니다.

“엄마, 육아서를 써 봐. 이만하면 엄마 아들·딸, 잘 자랐잖아? 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

농담처럼 던진 아이의 말이 씨앗이 되고, 싹이 되어 내 안에서 자랐습니다.

‘내 아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엘리트도 아닌데, 육아서에서 뭘 써야하지.’라는 처음 생각은 사실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하는데, 내 아이들을 한 사람의 어른으로 이 사회에 우뚝 서게 했으니 그만하면 잘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뭘 잘했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저 조근조근 들려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누구나 ‘아,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가 봐.’, ‘그때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순간과 맞닥뜨립니다. 그래요. 우리는 누구나 그 순간의 엄마은 처음이니까요. 너무 부끄러워서 평생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생깁니다, 너무 미안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도 생기지요. 엄마도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하니까 뭐냐고 묻더라고요. 아직도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보면 별일 아닐 거라고 확신했지만 내겐 ‘별일’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그 순간들도 이야기에 담으려고 합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보겠네요.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숭고하고 희생적인 엄마의 아름다운 이야기라기보다 좌충우돌 초보 엄마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든 ‘초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매 순간 ‘초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스물 여섯 딸아이의 엄마도 처음이고, 스물 아홉 아들 아이의 엄마도 처음이니까요. 게다가 이제 며느리까지 생겨버렸습니다. 좀 무섭네요. 잘 할 수 있을까요?새로운 엄마 역할요.

책장 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바래져 가는 육아일기를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임신 초기에 찍은 초음파 사진은 백지가 되었더라구요. 지난 날의 추억이 기억 속에서 사라졌듯 사진의 형상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육아일기 속에는 아이들의 성장기가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에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낱낱이 들어있구요. 돌아보면 육아의 시간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시간이기보다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감정들과 삶의 방식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조금 더 깊어지고, 나의 삶도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저는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 강의를 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림책 육아’라는 타이틀로 많은 강의를 진행했는데, 강의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육아는 언제 끝나나요? 고등학교 졸업하면요?”

저는 대답합니다.

“죄송하지만, 육아는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엄마’를 선택한 이상, 벗어날 수 없어요.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여러분은 엄마입니다.”

절망적인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깊어지는 중입니다.”

마음을 다해 ‘육아’하고 있다면 가슴이 아리고, 속이 자글자글 상하는 그런 순간을 겪고 있겠지요. 나의 한계와 부딪히고 있을 것입니다. 아주 난감한 나의 성질머리와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과 대면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조금씩 깊어집니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입니다. 딱히 뭘 해줄 필요 없이 혼자서 잘 해나가지요. 심지어 자기 손으로 번 돈을 엄마의 용돈으로 건네기도 합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이제는 그저 다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바라볼 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임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곧 좌충우돌 하며 “아, 며느리가 있는 엄마는 처음이야.” “아이구, 사위가 있는 엄마는 처음이네. 아, 어렵다.” 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육아 중입니다. 여전히 깊어지는 중입니다.


2025년 11월 사랑하는 예건이, 예원이 엄마 최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