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무게
나의 임신 기간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열 달여의 임신 기간 내내 유난히 냄새에 민감해져, 냉장고 문을 열 수 없었다. 먹으면 게워내고, 살기 위해 또 먹고, 또 게워내고를 반복하는 시간들이었다. 간신히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내도 살 수 있을 만큼의 극소량밖에는 먹지 못하고, 밥상을 물려야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러니 아이를 가졌을 때는 실신하기 일쑤였다. 먹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져도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던 그 때는 그저 견뎠다. 하루 종일 울렁거리고, 음식만 보면 벌컥 무서워지는 시간에도 배 속에 아이를 위해 먹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먹기 위해 노력했지만, 태어난 첫 아이는 2.7kg이었다. 남아 평균을 훨씬 못 미치는 아주 작은 아이였다. 까무잡잡하고 마른 아이를 보며 간호사들은 "아이가 작아서 눈 밖에 안 보여요. 눈이 초롱초롱해요."라고 말했다.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더 잘 먹지 못해 미안하기만 한 엄마로 나의 '엄마 생애'는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먹지 못하는 시간은 나의 인생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나 말고 온전히 책임져야 할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시간, 나 최혜정에서 엄마 최혜정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완전한 체질 개선을 필요로 하는 시간인데 당연한 견딤이 필요했던 것이다. 흔히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은 출산 후에 좋아하는 음식이 바뀌었다는 말을 한다. 체질도 변했다는 말을 한다. 의학적으로도 그런 결과를 보인다고 한다. 나 역시 임신과 출산 이후에 못 먹고 싫어하던 음식을 잘 먹게 되고, 잘 먹던 음식을 안 먹게 되기도 했다. 생야채를 무슨 맛으로 먹냐던 내가 땡초를 와작와작 씹어먹고, 샐러드를 흡입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던 나는 고기를 탐하는 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먹지 못하는 시간은 새 사람이 되기 위한 체질개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되면 매사에 나보다는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건강보다는 아이의 건강을 챙기게 된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 뇌구조가 바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였는데,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의 뇌영상과 임신기간, 출산 후를 비교해 본 결과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인지를 담당하는 뇌부위의 회백질 크기가 임신 전보다 줄어들었는데, 이는 '회백질 가지치기'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신경세포체가 모여있는 뇌의 겉부분인 회백질에 가지치기가 일어나면서 중요한 연결망은 강화되고 나머지는 시들게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기능의 상실이 아니라 뇌 부위가 특화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회백질이 많이 줄어든 엄마는 아이에 관한 애착이 강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먹지 못하는 시간'은 뇌 속 뉴런의 가지치기 시간이였으며, 나를 치고, 아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어느 날 살포시 꽃망울을 터트리며 꽃을 피울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이 있다. 그 애씀의 시간을 도우려 나는 가만히 가위를 갖다대고 가지치기를 해준다. 잘려나가는 가지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조금 마음이 애리기도 하지만, 꽃 피울 순간을 위해 아픔을 감당하라고 읊조리며 꽃봉오리 주위의 가지들을 잘라낸다. 꽃봉우리에 조금이라도 영양분을 더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뇌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나를 버리는 순간,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새 생명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는 순간,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엄마는 태어난다. 왕좌에 앉으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듯, 엄마가 되려면 새 생명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기꺼이. 감사하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는 감격으로. 인생의 어떤 도전보다 숭고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