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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

(2) 거시 정신분석학사(史) 보론 : 정신분석학의 여러 갈래들

by 이준유

개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창시한 이후 개인심리학, 분석심리학, 대상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정신분석학파가 생겨났다.


이 글의 제목은 프로이트의 논문 중 하나인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1937)*에서 따왔습니다. 이 논문은 정신분석의 종결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말하자면 ‘정신분석 치료는 언제 끝낼 수 있는가, 혹은 끝내야 하는가?’를 다룬 논문인 셈이죠.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 독일어판

또한,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은 프로이트 생전 출간된 마지막 논문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을 심리치료뿐 아니라 사회, 문학, 철학, 심지어 예술비평까지 확장했던 프로이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논문이 결국 '치료'에 관한 논문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이 논문의 제목이 마치 프로이트의 선언처럼 느껴지고, 동시에 그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더군요. 프로이트는 '끝이 있는 분석'의 시대를 종결했고, 동시에 '끝이 없는 분석'의 시대를 열었다고요.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은 그의 손을 떠난 후 (앞서 소개한) 융과 아들러, 안나 프로이트**, 쟈크 라캉, 에릭 에릭슨***, 에리히 프롬 등에 의해 '끝없이' 발전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끝이 없는 분석들, 즉 정신분석학의 여러 갈래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시대를 거치면서 어떤 갈래로 뻗어져 나왔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개인심리학 - 모든 문제는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먼저 프로이트에게서 가장 먼저 탈출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부터 알아볼까요. 당연히 개인심리학의 수장은 알프레드 아들러이며, 그의 사상을 요약하면 '열등감'과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신체의 어느 기관에서 열등감을 느끼는데, 권력을 얻기 위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신경증이나 강박증 등이 발병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이론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아들러. 오히려 그러한 배반 덕분에 정신분석의 지평이 넓어졌다.

그의 주장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예컨대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키 큰 사람이 비교적 쉽게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그러한 권력을 얻고자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키를 키울 순 없으니 근육을 키운다든가 돈을 많이 번다든가 하는 식으로 노력하겠죠. 이때 강박적으로 운동에 집착하면 강박증, 돈 버는 데에 미치면 신경증이나 정신증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 않나요?


인간 행동을 '목적'에서 찾은 탓에, 개인심리학은 지금에 와서는 자기계발서에 자주 활용됩니다. 몇 해 전 『미움받을 용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들러 심리학의 자기 계발적 측면과 직관적인 이론의 장점을 잘 보여준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분석심리학 -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신화가 존재하는 까닭


분석심리학은 앞서 소개했듯이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해 창시된 정신분석학이며, 최근 MBTI 때문에 더 유명해진 학문이기도 합니다.**** 아들러가 인간의 보편적인 권력욕에, 프로이트가 인간의 근원적인 성욕에 집중했다면, 융은 인간의 공통적인 무의식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신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이로부터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상정했습니다.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의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융은 정신분석과 신화의 세계를 접목시켰고, 인간의 성격을 유형별로 정리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이론은 다소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 정신분석학자는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융이 고안한 수많은 용어와 개념들은 정신분석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나, 거기에 콤플렉스 있잖아.”처럼 거의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는 '콤플렉스 Complex'가 있겠습니다. 콤플렉스는 복합적인 감정체라는 뜻으로, 하나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경우는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왕왕 발견되는데요. 프로이트 또한 융과는 이미 결별한 사이였음에도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양가감정'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자아심리학 - 프로이트의 정통 후계자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융의 ‘분석심리학’에 맞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자아심리학’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 사후 그의 자아심리학을 계승한 정신분석가는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였습니다.

프로이트의 딸이자 정통 후계자,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895~1982)

아마 원초 자아 Id - 자아 Ego - 초자아 Super Ego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원초 자아가 쾌락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면, 초자아는 이와 반대로 사회규범이나 규율, 규준 등을 따르길 강요합니다. 이 사이에서 둘 사이를 적절히 조화하는 역할을 자아가 맡고 있는데, 이러한 자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경증이나 강박증, 정신증 등이 생긴다는 것이 자아심리학의 주요 이론입니다.*****


안나 프로이트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프로이트의 방어 기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것인데요. 물론 프로이트도 방어 기제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하긴 했지만, 체계화한 데에는 안나 프로이트의 공이 큽니다. 안나 프로이트는 특히 초등 교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동 정신분석학 발전에도 기여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멜라니 클레인과 대립하기도 했죠.


때문에 멜라니 클레인과 영국 정신분석학회는 대상관계 이론이라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을 정립하게 됩니다.


대상관계학 - 유년기의 관계가 인생을 결정한다


대상관계 역시 프로이트에 의해 처음으로 쓰인 말입니다. 하지만 멜라니 클레인을 비롯한 영국 정신분석학회에 의해 발전하여 유명해졌죠. 이때 '대상'이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에 관계 맺는 사람, 주로 부모를 가리킵니다. 즉, 부모의 양육방식과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현재의 정신상태와 인간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죠.


자아심리학이 한 개인의 과거 정신세계에 집중한다면, 대상관계학은 과거의 인간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정신분석학의 갈래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현대까지도 활용되는 이론이기도 하죠. 특히, 오늘날 다양한 가족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유년기 트라우마를 고려할 때, 대상관계학은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과 활용도가 높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상관계 이론을 정립한 멜라니 클레인(Melanie Klein , 1882~1960).


사회심리학 -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의 교차점을 찾아서


사실 사회심리학의 기원을 따지면 정신분석의 역사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회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관계를 연구한 철학자를 따지자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올라가거든요. 다만 과학적 심리학의 출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비슷한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의「군중심리」도 이때 나왔죠.


따라서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사회 심리를 분석한 경우로 제한한다면, 대표적인 학자로 에리히 프롬을 들 수 있는데요. 네,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을 쓴 그 사람이 맞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였던 에리히 프롬은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나치즘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프로이트도 정신분석으로 사회(문명)를 설명한 적은 있지만, 당시 최신예 사회 사상이자 특유의 타협치 않는 과격함으로 유명했던 마르크스주의와 결합은 획기적인 것이었죠.

정신분석과 사회학의 결합을 시도한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1980).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이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기도 하고, 사회심리학은 아예 다른 학문 분야가 되었지만, 에리히 프롬의 시도는 정신분석이 사회를 통찰하는 도구로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로고테라피 - 인간은 의미의 존재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정신분석학의 갈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저서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신분석이라기보다는 정신의학이나 치료요법의 의미가 더 강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프로이트와 교류하였고 자신의 이론을 가리켜 "프로이트, 아들러의 정신분석에 이은 제3학파"라고 칭할 정도였으니 정신분석의 한 갈래로 소개해도 좋을 것 같아 간단하게나마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로고테라피는 흔히 의미 치료라고 합니다. 원리 역시 간단하죠.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을 때 우울증, 중독증과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원리와 달리, 빅터 프랭클이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게 된 과정은 매우 극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피해자였거든요. 정신의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죽는 이유와 죽지 않는 이유를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을 때, 삶의 이유가 없어질 때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여기에 착안하여 그는 의미 치료, 즉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것입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몸소 경험하고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

정신분석은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캐나가며 무의식을 탐구하고 억압된 것을 분출시킴으로써 심리 질병을 치료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치료 기간도 길고, 오래 걸리며, 당장의 우울증을 빠르게 이겨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는 치료기간도 비교적 짧은 편이고, 현대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에 특화돼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신분석을 보완하는 측면이(혹은 더욱 뛰어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둔 처절한 생의 기록으로 탄생한 학문이니만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정신의학이죠.




프로이트에서 출발한 정신분석은 아들러와 융을 거쳐 안나 프로이트, 멜라니 클레인, 에리히 프롬, 빅터 프랭클까지 다양하게 변용되고 변형되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만 보더라도 기존의 정신분석과 공통점을 찾아보기가 어렵죠. 앞서 언급했듯이,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정신분석의 장점이자 여전히 정신분석이 공부할 가치가 있는 까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긋 정신분석의 여러 갈래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새로운 정신분석을 찾아내고 발전하는 이들의 노력은 다시금 프로이트로 복귀하게 만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프로이트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그의 이론적 변천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미주]

* 맹정현 정신분석가는「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이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정신분석의 종결'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쪽이 더 정확한 번역 같긴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서적을 기준으로 제목을 인용합니다.

** 프로이트의 딸로, 멜라니 클라인과 함께 아동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자아심리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방어 기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대표작으로 『자아와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 교양으로든 전공으로든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숙할 이름의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심리적 발달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자아 발달론'을 구축했습니다.

**** 한 가지 추가적으로 언급하자면, MBTI는 융에 의해 고안된 건 아닙니다. 융은 그저 성격 유형론(외향 vs 내향)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죠.

***** 안나 프로이트와 자아심리학을 추종하는 이들은 프로이트를 계승하긴 했으나 프로이트가 말년에 주장한 이론인 '죽음 충동'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그러나 죽음 충동에 관한 활발한 논쟁과 철학적 정립과정을 생각해본다면, 프로이트주의자들도 프로이트를 '배반'함으로써 그에게 복귀한 셈입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하지현,『정신의학의 탄생』, 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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