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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문학

모든 투기버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

'금융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슬러

by 어투독

투자에 있어서 확실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는 버블과 폭락의 사이클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에드워드 챈슬러는 고대 로마부터 1990년대까지 인류가 반복해 온 금융투기의 사례를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18세기 초 영국의 사우스시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19세기 철도 투기, 1929년 미국 대공황, 1980년대 일본의 자산 버블, 그리고 1990년대의 인터넷 거품까지 모든 투기적 버블에서는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그 특징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투기의 거품에서 미리 빠져나오고 폭락에서 매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투기적 버블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특징은 항상 신기술에 대한 찬양과 함께 버블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운하, 철도, 자동차, 비행기, 라디오,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신기술은 항상 투기꾼들을 흥분시켜 시장으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18세기 운하의 개발당시 운하는 너무나 혁명적인 것이었다. 운하는 유통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철도는 운하보다 훨씬 더 혁명적인 것이었다. 철도를 처음 본사람들은 매연 때문에 동물들이 죽고 닭들이 달걀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너무나도 빨랐기에 철도에 탄사람은 가루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철도의 압도적인 이득 덕분에 철도는 인간사회에 자리 잡았고 인류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철도로 인해 지역갈등이 점차 해소되고 심지어 철도회사 주식은 어떤 공황에도 안전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떤 공황에도 안전한 주식이란 없었다. 신기술은 언제나 투기적 버블이 만들어냈고 많은 회사들이 도산했다.

철도 이후에는 자동차가 투기의 대상으로서 철도를 대체했다. 1920년대 미국 자동차는 700만 대에서 2300만대로 폭증했다. 이런 상황은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1925년~1928년 GM의 주가는 10배나 올랐다. 이후엔 라디오가 자동차의 관심을 대체했고 라디오회사 RCA의 주가는 1.5달러에서 115달러까지 폭등했다. 또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비행을 성공하자 항공산업으로 번졌고 이어서 라이트항공, 보잉의 주가도 올랐다.

항상 신기술은 등장한다. 그리고 버블을 만들어내고 많은 상처를 남긴다. 저자가 책을 집필할 당시는 1990년대로 한창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이다. 저자는 그 부분을 지적한다. 신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든 투자자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 앞에 다가와있는 신기술인 AI는 어떻까? 상처 없는 영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버블에서 보이는 특징 두 번째는 유명인들이 입방정이다. 세상을 바꿀 신기술이 등장하고 경제가 더할 나위 없이 호황을 누리면 어김없이 유명기업인들은 이런 새 시대가 영원할 것인 양 한 마디씩 거든다. 저널리스트 월터 베이지헛은 “투기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인들과 은행가들은 현재 번영이 더 큰 번영의 시작이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새 시대의 관념을 설명했다.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금융공황인 미국의 대공황 직전 무디서의 설립자 존 무디는 1927년 “우리가 새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난 6년 동안 지속돈 미국 경제의 호황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로렌스 스미스는 “고점에서 주식을 샀을 때에도 투자원본을 회복할 수 있는 순간은 꼭 온다”라고 강변했다. 원본손실을 입을 확률이 15년 동안 1%도 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경제학자 어빙피셔는 1929년 가을 “주가가 아주 높은 고원의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다우존스가 하루아침에 30% 이상 곤두박질쳤고 이후 최저점 기준으로는 90% 폭락했다.

깨방정은 기업인들 뿐만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현재 누리는 호황이 자신의 업적인양 자랑스럽게 공치사를 한다. 1719년 11월 23일 영국왕 조지 1세는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유럽이 영국의 힘과 권고에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허풍이 아니었지만 1년 뒤 사우스시의 파도가 왕국을 덮쳤다. 또 1720년 이후 105년이 지난 1825년 이머징 마켓투기 버블에서 왕은 지금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모든 계층이 안락과 만족을 느끼는 시기는 영국역사상 전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1920년대 마진론이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었음에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쿨리지는 1928년 2월에 “마진론은 우려할 게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대공황이 그토록 참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마진론의 상환이었다. 쿨리지뿐만 아니었다. 주식시장에 대해서 몇 차례 경고를 했던 하버트 후버 대통령마저도 1928년 대통령후보 지명 수락연설에서 “빈곤의 종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라고 선언하면서 당시 만연한 낙관론을 옹호했다. 책을 집필하던 시점은 1990년대에는 어땠을까? 1997년 클린턴도 새 패러다임을 옹호하면서 “미국경제가 너무나 잘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경기순환이라는 개념이 파기되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2000년 닷컴 버블은 터지고 붕괴했다. 경기순환이란 호황화 불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클린턴은 불황이 사라졌다고 선언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세 번째 버블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은 투기꾼들이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나는 빠져나갈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1720년대 사우스 시 버블 당시 위클리 패킷은 1720년 5월 7일 자에서 버블 기업들이 내세우는 사업계획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이어서 한쪽 눈을 감고 사기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순진한 투자자들이 덫에 걸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위클리 패킷은 당시의 상황을 잘 꼬집에 보도를 했지만 너무 순진한 측면도 있었다. 투기꾼들이 그들의 생각만큼 순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사기인 것을 알고도 투기에 뛰어들었다. 16세기 튤립 버블에서 한 사람이 이런 광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투기꾼에게 묻자 그는 “앞으로 2년이나 3년 동안 지속된다면 내겐 충분하다”라고 답했다. 위클리 패킷보다는 더 타임스가 더욱 통찰력이 있는듯하다. 더 타임스에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청약꾼들 가운데 조만간 파국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지금 당장 주식을 팔고 투기대열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투기꾼은 없다. 그런데도 투기꾼들은 자신만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죽는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시장에 더 이상 자신보다 멍청한 투자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심리학자 패스팅어는 인지부조화를 설명하면서 "외부에서 주는 고통보다 수익을 클 때 사람들은 고통을 감수한다"라고 말했다. 현실의 상황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면 외무상황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이다. 대공황 직전 증시는 활황을 띄었지만 경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높은 이자율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기 시작했고 임금상승은 거의 정체되어 있어 노동자들의 할부채무는 늘어갔다. 영국과 독일에서 뉴욕으로의 금유입이 늘어나는 바람에 이들 국가에서는 이자율이 상승했고 따라서 미국의 수출이 둔화되었다. 또 곡물 수출둔화로 농산물 값이 내려가 당시 미국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의 구매력이 저하되었지만 이런 사실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만약 주변의 사람들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을 무시하고 위험에 뛰어들면서도 자신만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것은 분명 위기의 징조일 것이다.


네 번째는 '정부의 자유방임주의'다. 정부의 방관이 투기적 버블을 만든 사례는 역사에 수도 없이 많다. 1960년대 주식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설립되어 주식으로 한탕해 먹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지만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1690년대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당시 정치인들은 정부가 투기를 제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20년대 이머징 마켓 버블에서 몇몇 의원들이 규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 정부는 투기에 대해 애매모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자유주의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투기는 상업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이를 미숙하게 억제할 경우 보이지 않는 손의 원활한 작용을 가로막아 시장의 효용성을 떨어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정부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투기에 대한 규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는데 실패했다. 또 1845년 철도 버블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1836년 몇몇 사람들은 정부가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철도노선을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팽배해 있던 자유방임주의 때문에 영국정부는 나서지 않고 철도는 무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철도투기에 연루되었는데도 오히려 철도회사 설립을 위한 법적 절차를 간소화해버렸다.

이런 자유방임주의가 잠시 힘을 못쓰던 시절은 바로 대공황 직후이다. 대공황은 너무나 참혹했기에 국민들은 정부가 시장, 기업들을 규제하고 통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런 정책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다. 루스벨트는 임기동안 자유를 제안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글레스스티겔법과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고, 내부자거래 시세조종을 불법화했다. 연준에게 마진론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증권감독기관인 SEC도 설립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그 자체가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시장을 대신해 정부가 주택, 노동, 금융, 소득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정책의 토대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이었다. 그러나 한 이데올로기가 영원히 가지는 못한다. 닉슨대통령이 금태환을 중단하면서 브레턴우즈 시스템이 무너지자 다시 시장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당시 시장주의의 선봉장은 밀턴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영국의 마가렛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사실상 경제학 스승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장은 다시 자유방임주의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다. 1987년 블랙먼데이가 터진다. 어쩌면 이후에 발생한 2000년대 닷컴버블, 2008년 주택시장 버블 역시 프리드먼의 유산일지 모른다.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정부는 자유방임을 지향하고 있을까, 정부의 개입을 지향하고 있을까? 정부의 자유방임과 ai의 신기술이 만나면 또다시 투기적 버블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투기적 버블에서 보이는 현상은 '도덕적 헤이'다. 1720년 영국 정부는 기존 채권자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저버렸다. 그럼에도 왕은 사우스시 주식을 개인적으로 샀다. 이런 왕의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우스시 주식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주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사우스시 주가의 하락을 왕이나 국가가 막아줄 것이라고 안심하면서 고점에서 주식을 계속 매수했다. 전형적인 도덕정 헤이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주가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조장한 사례는 투기의 역사에 종종 등장한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대장성이 NTT의 주가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주식시장이 엄청나가 폭등 중인데 그 지점에서 NTT라는 거대한 국영 통신회사를 민영화시킨다. 재팬 이코노믹스 저널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주식을 매각하기 때문에 주가하락에 따른 국민들의 손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NTT의 주가를 올럈다. 투자자들은 NTT주식을 사면서 일본 자체를 산다고 믿었다. 따라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주식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NTT와 사우스 시 모두 정부가 재정조달을 위해 민영화를 추진한 것이었고 둘 다 주가가 너무 올랐다. 무엇보다 둘 다 투자자들이 주가가 폭락할 경우 자신이 아니라 정부가 손실을 짊어져줄 것이라고 믿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는 AI라는 신기술의 새 시대 앞에 서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새 패러다임에서 투기적 버블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경고가 투기적 버블을 막아낸 사례는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버블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투기적 본능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존케네스 게브레아스는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과거 금융역사에 대한 극도로 짧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미리 역사의 투기사례를 학습하고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잘 관찰해서 징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유리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금융투기의 역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좋은 패를 들고 게임을 시작한 셈이다. 그들보다 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투기는 브레턴 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를 붕괴시켜 변동 환율제로 전환시켰고, 최근에는 일본과 한국 등아시아 국가들의 관료자본주의를 붕괴시켜 시장자본주의로 변화시켰다. 무정부적인 파워로서 투기는 현재 지속적인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사슬을 끊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환자처럼 날뛸 것이다. 마치 진자처럼 경제작 자유와 규제 사이를 오간다는 말이다.

https://youtu.be/qRs0fp3u2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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