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의장이 직접 말하는 '위기의 징조들'
벤 버냉키는 2008년 금융위기를 구해낸 연준의장으로 평가받아 노벨상을 받았지만, 반대쪽에선 당시에 너무나 많은 돈을 뿌려 문제의 원인을 만들기도 했다는 양가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좋게만 평가할 수도 없다는, 이점을 인지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당시 워싱턴에 있던 세 사람, 벤 버냉키(당시 연준의장 이하 벤), 헨리 폴슨(당시 재무부장관, 이하 행크), 티머시 가이트너(당시 뉴욕의장, 행크 이후 재무부장관 엮임, 이하 팀)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면 반성문을 가장한 변호록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막지 못한 것은 맞지만 최소한 이런 노력들은 했다. 정치가 도와주지 않았다. 호황기에 정치는 규제를 찬성하지 않는다. 같은 변호 말이다.
기본적으로 과도한 레버리지와 단기 금융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정치권은 미국인의 주택 소유를 '아메리칸드림'으로 포장해 주택 버블의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이에 응답하듯 금융기관들은 너무 쉽게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했고, 대출 서류도 필요 없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주택 담보 채권을 묶어 다시 증권화하여 시장에 유통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대출 상환이 되지 않더라도 금융기관은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MBS(주택담보채권유동화증권)는 다시 여러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져 금융기관 곳곳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미국 금융의 레버리지 중 절반 이상이 그림자 금융 또는 비은행권 금융기관에서 창출되었습니다.
결국 베어스턴스를 시작으로 리먼브라더스, AIG, 메릴린치, 시티은행 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위험은 그림자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버핏은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내 파트너가 에이즈인지 알 수 있지만, 내 파트너의 파트너가 에이즈인지 알기 어렵다." 파생상품의 구조가 너무나 복잡해 전문가들조차 이 상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또한, 규제를 받지 않고 있던 금융기관이라 연준과 재무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비유하자면,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출동했는데 자기 관할 밖의 지역이라 화재 진압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연준은 긴급 권한을 의회로부터 받아 많은 구제 금융을 실시했습니다. 동시에 재무부 역시 경기 부양책을 실시해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연준 대차대조표는 위기 전보다 약 5배가 늘어났습니다. 저자들은 어쨌든 이전의 위기보다 또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위기를 잘 막아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벤과 헨크는 청문회에 불려 가서 변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왜 옳은 일인지 설명해야 했습니다.
설명의 어려운 점은 ‘정확히 누가 구조되었는 가’입니다. 저자들은 월가의 기관들을 구제해 주기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죠. 금융기관들의 CEO와 직원들은 일자리와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지고 회사가 파산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원을 해주면서 많은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기에 위기가 끝나고 나서 결론적으로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요점은 이겁니다. “만약 피해가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거죠.
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옆집에서 담배를 피우디가 화재가 발생에 위아래로 불이 번질 위기라면, 그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응징할 가장 좋은 방법은 집이 다 탈때까지 내버려 두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필히 불은 이웃집으로 번지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일단 옆집의 불을 끄는데 집중하는 겁니다. 도덕적 해이를 걱정해 집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거죠.
책은 결론적으로 비판론자들이 걱정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려했던 부분은 인플레이션과 도덕적 해이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돈을 이렇게 풀었으니 엄청난 인플레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죠. 하지만 우려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책이 출판할 당시까지만 해도 말이죠.
그런데 2024년 현재 연준은 무엇과 싸우고 있습니까? 인플레이션입니다. 연준의장 제롬 파월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인플레가 지속되자 비난을 받았죠. 그리고 현재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노력하다 침체를 유발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전 상당 기간 인플레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는 ‘아마존 효과’를 가장 저렴한 물건을 찾기가 쉬워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중국의 저가품이 미국의 인플레를 막아줬다고도 말하죠. 지속된 세계화는 각자의 역할 분담을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해냈기에 인플레를 어느 정도 막은 것입니다. 더불어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뿐만 아니라 미국이 찍어낸 국채까지 사주었죠. 결론적으로 미국은 채권을 찍어 중국에 팔고 그 돈으로 중국산 저렴한 제품을 산겁니다. 그런 인플레이션을 막아줬던 요인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저렴한 중국의 공장은 더 이상 미국에 수출을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거기에 미국은 세계의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일자리 때문이기도 하고 주요 자원, 대표적으로 반도체공장을 유사시 위험할 수 있는 한국이나 대만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겠지요. 중국 또한 미국채를 더 이상 매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도하고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우 전쟁에서 미국 달러가 한순간에 동결되는 모습을 본탓일 겁니다. 게다가 중동 전쟁으로 유가 또한 불안정합니다. 인플레를 막아줬던 여러 요인들이 이제 반대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워드 막스 같은 구루들은 ‘이제 저금리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고금리를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2.5-4 정도의 중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짓지 않는 개로 여겨졌던 인플레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그 이빨을 드러냈고, 따라서 이전의 연준이 인플레와 실업률 사이에서, 인플레를 무시하고 실업률만을 보고 할 수 있었던 정책들을, 이전처럼 자유롭게 하기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연준의 통화정책의 여력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는 거죠.
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잘 막아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고 했습니다. 벤을 비롯한 3명의 저자들인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자신들이 잘 해냈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너무 빨리 축배를 들었다고 생각하고 긴장하고 있을까요? 그 열쇠는 지금 연준 의장인 파월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파월이 이번 인플레와 경기침체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 경기를 잘 유지시킨다면 벤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역사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겁니다.
비판론자들의 두 가지 우려 중 나머지 하나인 도덕적 해이는 어떨까요? 2008년의 정책들로 은행들은 위기가 오면 정부와 연준이 막아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진 않았을까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먼은 ‘금융 위기 이후에는 금융위기를 만들어낸 원인 제공자들을 반드시 규제해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본적인 문제는 앞서 말했듯 과도한 레버리지와 단기금융으로 한계를 넘어선 자금조달을 했다는 점, 그리고 규제의 밖에 있었단 그림자 금융이라고 말했습니다. 팀이 제시한 최고의 위기 대응책은 ‘자본금을 확충하라’ 였습니다. 아직 까지는 금융 위기 이후 정비한 규제들이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단기 금융시장은 절반이상 줄어들었고 금융기관들이 자본은 탄탄해졌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런 규제들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2008년 위기의 시작은 투자은행과 시중은행의 역할을 분리했던, 대공황 이후 만들어진 ‘스티븐-글라스법’의 폐지였다. 어찌 되었든 공화당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죠. 트럼프 역시 규제 완화를 외칩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고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보인다면 이것은 ‘위기의 징조’ 일지도 모릅니다. 규제가 완화되면 사람들은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자산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이는 또다시 과도한 레버리지로 반복될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이런 시장의 수요에 맞게 여러 상품들을 출시할 것이고 규제를 하려는 시도는 이들의 로비로 인해 막힐 겁니다.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람들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며 탐욕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방을 해도 어쨌든 위기는 반복된다. 지금 미국은 그런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을까요? 저자자들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이전에 비해 많은 예방책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위기가 터졌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부족하다” 비유하자면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예방책, 마스크, 정기검진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정작 응급실은 폐쇄해버린 거죠. 2008년의 위기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연준의 권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권한을 새로 만들어 부여하기까지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고요. 반면에 금융기관은 오전에 우량했던 은행이 오후에 파산하기도 하죠.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2008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 결정들을 신속하게 내려주었습니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를 위해 월가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죠. 지금도 과연 이런 결정들이 내려질 수 있을까요?
과도한 대응이 과소 대응보다 낫습니다. 금융위기 대응의 핵심은 신용 회복이죠. 사람들이 다시 투자를 하고 은행에 돈을 맡겨야 합니다. 이런 신용회복에는 압도적인 힘과 대응을 보여주는 편이 확실하다. 찔끔찔끔 대응해서는 신용을 회복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저자들의 조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연준과 재무부에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위기를 막아냈던 많은 권한들은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의회는 발생하지도 않은 위기 때문에 많은 권한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소방서가 많다는 이유로 화재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이고, 응급실 많다는 이유로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과 같은 논리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2008년 효과가 있었던 권한들을 다시 연준과 재무부에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