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했으며, 불황을 연구한 경제학자 '폴 크루먼'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 이 책은 전 세계에 발생한 금융 위기들. 라틴아메리카 위기부터 멕시코 테킬라 위기, 일본의 버블붕괴,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까지 다양한 위기들을 사례로 경제 위기는 왜 일어났으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당시의 경기 후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말해볼 것은. "도대체 경기 침체라는 것은 왜 발생하는가?"입니다.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스스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경기가 후퇴하는 현생은 매우 특이한 것입니다. 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불경기를 설명합니다.
1970년대 그레이트 캐피톨힐 베이비 시팅 협동조합의 사례입니다. 이 조합의 목적은 미국 국회의사당에 근무하는 젊은 부부들끼리 서로 아이를 맡기고 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쿠폰 한 장으로 한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었죠. 아이를 돌보 기러 한 부부는 아이를 맡기는 부부로부터 해당하는 시간만큼의 쿠폰을 받고 아이를 봐주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맡긴 시간만큼 다른 아이를 돌봐주면 되는 구조였죠. 그러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당장 외출할 계획이 없는 부부들은 나중을 위해 최대한 많은 쿠폰을 모아두려고 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번 연달아 외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쿠폰을 확보하려는 부부들이 늘어났습니다.
요점은 회전되는 쿠폰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시기가 닥쳤다는 것입니다. 모아놓은 쿠폰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부들은 다른 부부의 아이를 돌보고 싶어 안달이 났고 외출을 꺼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모아놓은 쿠폰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그 결과 베이비 시팅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죠. 베이비 시팅 조합이 불경기에 들어간 겁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 일은 조합원들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잘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합원의 능력이 아니라 쿠폰을 모으는 일에만 집중해 실제 아이를 맡기는 일이 감소한 겁니다. 현실 경제로 치면 경제 구성원들의 생산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저축만 해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쿠폰의 공급을 늘리는 조치를 취했죠. 쿠폰 보유량이 늘어남에 따라 부부들은 좀 더 자주 외출했고 이로 인해 다른 부부들은 아이를 돌볼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해결은 조합원들의 보육기술의 향상 때문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개혁을 해서도 아닙니다. 단순히 통화 공급을 늘려 통화혼란을 바로 잡았을 뿐입니다. 불황은 보통 대다수의 대중이 현금을 쌓아둘 때, 다시 말해 투자보다 저축을 많이 할 때의 문제이며 이는 더 많은 쿠폰 발행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쿠폰 발행지는 중앙은행입니다. 이처럼 쉬운 일이라면 우리는 왜 불황을 겪을까요? 지금이야 모든 부류의 정제 학자들이 대공황은 연방준비은행이 대규모 돈을 투입해 이겨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의 전통적 지혜는 아니었습니다. 불황은 언젠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므로 인위적 회복은 다른 나쁜 위기에 빠지게 한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생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습니다.
일본의 이자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내려가 있었는데도 경제는 여전히 불황이죠. 왜 그럴까요? 다시 베이비 시팅 조합의 사례로 돌아가서 계설성을 추가해 보겠습니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대두분 외출을 줄이고 집에 머물면서 다른 아이를 보려고 할 겁니다. 여름을 위해 쿠폰을 축적하려는 것이죠. 그런데 겨울이 너무나 춥고 오래 지속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쿠폰량이 충분함에도 아이를 맡기고 밖에 나가려 하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일만 하려고 할 겁니다. 1990년대 일본은 너무 추운 겨울이었던 겁니다. 심각한 노령화가 문제였을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이자율이 제로인데도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학자들은 '유동성의 함정'이라 불렀습니다.
몇 가지가 범인후보로 떠오릅니다. 그중 하나가 엔화의 하락이죠.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들이 엔화가 하락하자 저렴해진 일본 제품에 비해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다른 원인으로는 위안화의 평가절하,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하락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말레이시아의 총리는 금융 거부들이 미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시했죠.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음모론일 뿐입니다. 반면 많은 서구인들은 권선징악으로 보았습니다. 부패한 정치권과 경제계의 유착관계의 문제로 죗값을 치른 것이라는 겁니다. 이 또한 문제가 있는 논리였습니다. 한국의 재벌은 정실주의와 부패가 만연했지만 35년간 한국의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결합이 있었다면 왜 하필 97년에 문제가 되었겠냐 하는 것이죠.
주된 원인은 바로 금융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며 퇴보가 아니라 발정을 향해 자유시장경제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지역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금융업자들의 제안을 마다 하지 않고 채무를 엄청나게 늘렸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러한 빛이 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금융 고리의 악순환을 타고 금융위기로 커진 겁니다.
아시아 경제를 파멸로 이끈 것은 과거와 달리 달러로 빌린 새로운 채무였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분명히 잘못한 두 가지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먼저 IMF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정부에 개입해 긴축재정을 요구했습니다. 재정적자는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죠. 지침을 따른 나라에선 수요감소로 불황이 더 악화되었고, 패닉은 더 커졌습니다. IMF의 지침을 따른 나라는 수요 감소로 경제가 망가졌고 지침을 따르지 않은 나라는 투자자들의 신뢰가 하락해 자금유출로 경제가 망가졌습니다. 다른 잘못하나는 구조조정을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정경유착과 독점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로컬통화의 투매와 직접적 연관이 있지는 않았죠. IMF는 이것이 신뢰 회복의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었죠.
하버드의 제프리 삭스는 통화의 가치가 투자자들의 눈에 싸게 보일 때까지 하락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며 그렇게 했다면 엄청난 불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환율을 만드는 고정환율제를 버리고 환율을 시장이 평가하도록 하는 변동환율제였다면 이토록 엄청난 불황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금리는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랬다면 금융 패닉의 촉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자율을 올리면 기업들의 경영악화를 통해 불황이 오고 환율이 상승합니다. 이자율을 유지하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환율이 오르고 이는 또 불황으로 이어집니다. IMF의 요구가 제대로 된 해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책은 또 조지소로스의 파운드화 공격 사건은 다룹니다. 그렇다면 소로스는 나쁜 짓을 한 것일까요? 저자는 소로스가 아니었더라도 영국이 유럽 통화시스템에 합류하고자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소로스는 그 기간을 단축시킨 것뿐이죠. 영국정부에 모욕감을 주기는 했지만 영국 전체에는 좋은 일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파운드화 하락이 경제 위기를 잠재웠기 때문이죠. 파운드화는 이전 가치보다 15% 정도 낮은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안정을 되찾았고 파운드화를 방어할 필요가 없어진 영국 정부는 이자율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낮은 이자율과 적정한 환율로 인해 영국 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고 몇 년 만에 이웃나라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죠. 결국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소로스의 파운드화 공격은 좋은 결과를 안겨준 셈입니다.
2008년의 금융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전의 대공황을 봐야 합니다. 1930년대 초반 경기가 후퇴하면서 상품의 가격이 폭락하고 채무불이행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1930년과 1931년, 1933년에 뱅크런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 보호 수단 시스템으로 글라스-스티걸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은행을 두 종류로 나눠 예금을 받는 상업 은행과 예금을 받지 않는 투자은행으로 구분했죠. 정부는 상업은행들의 리스크 감수 수준을 제한한 대신, 그들이 연방준비은행에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투자은행들에 대한 규제는 훨씬 느슨했는데 왜냐하면 비 예금기관으로서 뱅크런에 처할 위험이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은 거의 70년 동안 금융위기를 막아 냈습니다. 하지만 1999년 이 법은 사라졌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투자은행, 즉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 확장되어 전통적인 은행들과 비등하거나 그보다 더 중요해졌지만, 정치인들은 대공황의 원인이 된 금융 취약성이 다시 생겨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나서서 한 가지 간단한 규칙, 즉 은행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기관들 다시 말해 은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제되어야 하는 모든 기관들을 은행과 똑같이 규제한다는 규정을 발표했어야 했습니다.
우선 위기 대응책으로는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소비 부응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거죠. 케인스식 경기부양책이 해결책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위기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금융개혁을 해야 합니다. 금융 개혁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구제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는 위기가 없을 때엔 반드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 가지를 많이 가지라면 다른 것은 적게 가져야 하고,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저자는 불황의 경제학은 공짜점심을 찾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은 자원을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마치 이전에 말한 조합원의 사례에서 아주 간단한 해결책, '쿠폰발행량을 늘리는 것'처럼 낡은 원칙 때문에 사용해 본 적이 없지만 효과가 있을 방법이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