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생각.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종의 기원’ 이후 생물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무엇인지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일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많은 부분을 사례로 들어가며 이기적 행동에 대한 많은 의문점들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 그런데 그중에 저자가 명쾌한 답을 내리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이 존재하는데, 오늘 글에선 그 부분을 다룰 것이다. 저자가 결론을 짓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우선 수컷과 암컷이 차이를 보자. 기본적으로 동물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난자는 비교적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암컷과 수컷을 나누는 기준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난자와 정자를 들 수 있다. 난자는 크고 수가 적다. 반면에 정자는 수가 많고 작다. 자연에서 난자는 수가 적은 반면에 정자는 흔하다는 뜻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한 마리의 수컷이 많은 정자를 이용해 부족한 난자를 임신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은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정자 하나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난자가 만나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공정하지 못한 거래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양분의 양에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따라서 임신 시점에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공평한 분량, 즉 50%보다 훨씬 작다.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여러 마리의 암컷을 이용하여 단기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컷의 암컷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투자하본을 기준으로 봤을 때, 기본적으로 불공정한 거래가 성사됨에 따라 수정이 이루어진다. 수컷의 암컷 착취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수정체가 사라진다면 더 큰 손해를 입는 쪽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 에너지가 이미 들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컷의 유전자는 이미 수정된 수정체 혹은 새끼를 지키라고 암컷을 강하게 압박한다. 그것이 암컷의 ‘이기적’ 유전자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몸아, 몸아, 네가 암컷이라면 유전자의 번영을 위해 지금의 새끼를 목숨 걸고 지키거라”
체내에서 태아를 키우는 것도 암컷이고 젖을 만들어 먹이는 것도 암컷이며, 양육과 보호의 부담을 지는 것도 암컷이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
반면에 수컷의 정자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수컷의 유전자 입장에서는 현재 임신한 암컷을 버리고 또 다른 암컷을 임신시키러 떠나는 것이 유리하다. “몸아, 네가 수컷이라면 나의 경쟁자인 다른 대립 유전자가 유도한 것보다 조금만 더 빨리 짝을 버리고 다른 암컷을 쫓아가라”라고 말하는 유전자가 번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컷은 떠나가버리려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암컷은 기본적으로 착취당하는 성이고 수컷은 착취하는 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로 인해서 두 성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번에는 암컷과 수컷의 차이를 보자.
우선 암컷은 신중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난자는 정자에 비해 만드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또 암컷은 태아를 품고 있기 때문에 수정한 뒤에 새끼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다. 반면 수컷은 도망칠 수 있다. 게다가 이종교배 또는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 있어서도 암컷은 불리하다. 손자도 못 만드는 개체를 10개월 동안이나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컷은 신중하다. 신중한 편이 암컷이 유전자의 입장에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수컷은 신중하지 않다. 이론상 많은 암컷을 임신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도망치는 것도 쉽다. 수컷 유전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전략은 가능한 많은 암컷을 임신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수컷은 화려하도록 진화했다. 남성다움을 어필해서 암컷에게 선택받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화려한 수컷 공작의 깃털은 영양소를 많이 섭취했다는 것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포식자로부터 깃털을 잘 지켜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가 됐든 그렇게 진화하는 것이 수컷의 유전자에게 유리했다. 화려한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는다.
정리하자면 화려한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하고 암컷은 신중하고 선택을 한다. 사실 수컷이 증명하기 전까지 교미하지 않으려는 암컷의 모습은 우리 인간에게서도 이미 친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 한 가지가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암컷이 화려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작의 꼬리에 해당하는 것을 과시하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은 화장을 하고 가짜 속눈썹을 붙인다. 남성을 그러지 않는다. 용모에 이상하게 관심을 갖는 남성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서도 의심을 사기 쉽다.
우리는 앞에서 공작의 암컷이 화려한 필요가 없는 것은 공작 암컷이 수컷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미 귀중한 자원인 난자를 가지고 있기에)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도 난자가 귀하고 정자가 흔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인간여성이 더 화려해졌는가? 이것이 의문이다. 현대의 인간수컷은 수요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기서 인간 수컷에게 공작수컷의 깃털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여성의 경우 화장, 눈썹 같은 치장의 요소가 존재하고 그래서 선택권이 남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했다. 타자가 개인적인 다른 관점을 제안해 보자면 남성의 경우도 공작깃털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비싼 외제차, 비싼 집, 높은 연봉일 것이다. 반면에 여성은 화장, 눈썹, 옷 같은 것들이 있다. 둘 다 공작의 깃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차이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옷을 선택하데 있어서 여성의 경우 몸매를 강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고 남성은 비싼 옷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하겠지만, 중요한 이유는 현재 인간의 문화는 자본주의중심으로 돌아간다. 즉 남성이 귀중한 자원인 돈을 더 많이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일반적인 다른 동물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수컷이 더 귀중한 자원들 투자하고 여전히 암컷에게 선택받는 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도킨스에 질문 '인간사회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암컷이 선택받는 입장이 되어버린 걸까?’로 돌아가 답을 해보자. 암컷은 기본적으로 난자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으니 난자를 귀하겨 여기고 그 결과 교미에 신중하다. 그래서 귀중한 자원을 많이 투자하는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자원 투자에 있어 암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야 수컷도 투하자본이 있기에 도망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둥지를 짓는데 시간을 투자한 수컷새들이 암컷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수컷새에게 있어 자원은 둥지를 짓는데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고 인간수컷에게 그 자원은 돈이다. 그래서 인간암컷도 본인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인간수컷,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비싼 차, 비싼 집을 가진 수컷을 선택한다. 고로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타자가 만들어본 하나의 가정이다.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강조하는데, ‘남성이 돈을 쓴다’ ‘여성이 선택한다’와 같은 사례는 이해를 위해 극단적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절대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 이유를 탐구해 보자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책에서 저자는 수컷은 목숨을 건 도박을 한다고 말한다. 화려하다는 것이 그 증거인데, 수컷 공작은 사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하고 화려한 꼬리를 만든다. 이 성향을 다시 인간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 인간수컷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카푸어가 대표적이다. 왜 인간수컷은 돈이 없는데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비싼 차를 타려고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책의 제시하는 유전자의 관점으로 돌아가보자. 이 책이 탁월한 점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모두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카푸어의 심리를 이해해 보자. 그들은 무엇을 위해 비싼 왜 제차를 고집하는가? 어쩌면 돈이 없음에도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본인의 생존에 불리하지만 어쩌면 번식에는 유리할 수도 있다. 비싼 차가 유전자의 확산에 유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 나의 비싼 차를 봐, 나는 이만큼 새끼를 돌볼 능력이 있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공작의 깃털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번식을 위해 화려한 깃털이라는 위험을 감수한 수컷 공작처럼, 수컷 인간 역시 굶어 죽을 위험이 있음에도 비싼 차를 타는 일종의 도박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남성의 허세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보이는 현상은 아닐까?
이런 행동은 일종의 사기로도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자원은 돈이고 따라서 암컷은 돈을 가진 남성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런 암컷을 노리는 수컷은 돈이 있는 척을 한다. 사실 자연에서도 동물들은 거짓말을 한다. 어떤 곤충은 수컷은 암컷에게 먹이로 구애를 한다. 그런데 어떤 수컷은 실제로는 먹이가 들어있지도 않은 선물상자로 암컷에게 구애를 하고 암컷이 포장지를 뜯는 사이 교미를 하고 도망쳐버린다. 이 수컷 곤충과 수컷 인간의 유전자는 같은 이유로 거짓말을 한다. 한편 이런 사기 치는 수컷이 많았지만 이에 대항해 사기꾼 수컷을 식별하는 유전자가 암컷 유전자 풀 내에서 진화를 하게 된다. 비싼 차를 타는 수컷을 선택했는데 카푸어라면 이 수컷을 선택한 암컷은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이 낮아져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사기꾼을 잘 구별하는 암컷이 더 생존가능성이 높아 퍼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성들이 남자의 허세를 싫어하는 경향은 사기적인 남성에 대항해 나타난 유전적 경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에는 이런 질문도 있다. 인간은 유전자에 더 영향을 받을까 문화에 더 영향을 받을까? 둘 다 영향을 받겠지만 보통 동물은 인간과 달리 유전자에만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이것이 인간이 특별한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유전자가 강할까 문화가 강할까? 혹은 합해지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갓난아기에게 비싼 외제차를 보여주면 그것을 원할까? 아닐 것이다. 아기의 이기적 유전자는 돈이 아니라 사탕을 원할 것이다. 유전자는 비싼 자동차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싼 차를 원할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비싼 차를 원하는 생물학적 근거, 즉 비싼 차를 원하는 유전자가 없으면서도 비싼 차를 원할까 하는 의문이다.
비싼 차를 원하는 것은 성장 후에 학습한 것이다. 그 원인은 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문화를 지배하는 한 가지는 돈으로 뭐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단어로는 물질 만능주의가 될 것이다. 우리가 ‘유전자가 비싼 차를 원하라’라고 명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원하는 이유는 비싼 자동차와 비싼 집은 많은 자식을 돌볼 능력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비싼 차가 실제로 성선택에서 유리하게 되어버린다.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된다. 우리 유전자는 생존을 원한다. 생존에 필요한 필수자원이 돈이라고 우리 뇌는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는 돈의 상징인 비싼 차를 갈망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전자와 문화요인’이 합해져서 탄생한 ‘자본주의적 성선택’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유전자의 이기성을 인간 문화에 대입해 보는 과정에서 나온 내용들이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조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일반화한 것일 뿐이다.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유전자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근거를 찾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진정한 교훈은 이기적 행동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기적으로 행동할만한 근거가 우리 유전자 안에 있다는 사실로 이기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할 선천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이타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유일하게 유전자의 폭정에 반발할 수 있는 동물이다. 히틀러는 파리를 폭격하라고 지시했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