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정원이 있다. 여느 주택들과 마찬가지로 집 경계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앞쪽엔 그보다 크기가 작은 꽃들이 심어져 있다. 우리 가족은 이사오곤 난 후 처음 맞이하는 봄이기에 그리고 식물에 대한 정보와 지식도 없기에 따뜻해지기만을 기다려 왔다. 요즘은 하나 둘 꽃을 피우거나 새순을 내보이는 아이들이 있어 이른 봄의 식물도감을 한번 만들어 보려 한다.
매화
맨 처음 봄을 알리는 이는 매화였다. 작은 매화나무가 한그루가 있었는데 메말라 보이는 작은 나무에서 하얀 꽃망울을 제일 먼저 보게 될지 누가 상상했을까 겨우내 헐벗은 나뭇가지로 누가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겨울을 지냈건만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기특했다.
수선화
나는 수선화를 좋아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 마당 한편에 아직 따뜻한 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홀로 피어있곤 했다. 그때엔 닭장도 있었는데 그 닭장과 수선화가 머릿속에 그려지곤 하는데 그 그림은 마치 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각나게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그 봄 즈음의 그런 분위기. 그래서인지 나는 흑백에 노란 수선화, 그러니까 회색에 노란색이 어우러진 그런 색감을 아직도 좋아한다. 우리 집 정원에 핀 꽃은 노란색 작디작은 수선화인데 남편이 daffodile 수선화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이야?라고 미심쩍어했을 만큼 앙증맞은 사이즈다. 내 기억의 수선화는 이보다 컸기에. 대학 때 영문학을 전공하면 필수로 그리스 신화도 들었어야 했는데 나르키소스가 자기 얼굴을 물가에 비춰 들여보다가 심취해 빠져 죽은 곳에 난 꽃이라 더 라니 그 모습이 마치 얼굴을 빼꼼 내민 모습 같기도 하다.
봄까치꽃
앙증맞기도 하지. 꽃의 사이즈는 새끼손톱의 반보다도 작은 이 꽃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는 꽃이다. 거리에선 그냥 지나칠 것만 같은 그런 꽃이지만 가까이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꽃이다. 보라색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까치꽃은 원래 일본어를 그대로 풀이해서 한 이름이었는데 창씨개명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귀여운 얼굴에 흉측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벚꽃
집에 벚꽃나무가 있을지 누가 알았을까. 매화와 벚꽃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까 싶어서였는지 활짝 펴 나름대로 명성을 자랑하고 싶어 하지만 너무나도 흔히 보아서인지 감흥이 덜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싶다. 오늘은 벚꽃에 말벌과 벌들이 가득하던데 최근 벌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이들의 방문은 더욱 반가웠다.
화살나무
울타리 목으로 심어진 나무가 겨우내 허물을 벗듯이 하고 있었는데 몇 차례 봄비가 오더니 새순을 품기 시작했다. 겉모습이 투박하여 예쁘단 생각을 못했는데 가을에 예쁜 단풍을 보여줄 거라고 하니 기대된다. 순은 먹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과연 시도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고 지났는데 앞집 이웃께서 알려주신 것은 화살나무에게 비밀로 하고 싶다. 이제 관심 가져줄게!
딸기
지난달 아들과 함께 딸기 체험하러 간 곳에서 받아온 딸기 모종. 물을 좋아하나 배수가 잘 되는 곳이어야만 한다고 해서 걱정하였는데 다행히 남편과 아이가 노지에 심었는데도 불구하고 꽃망울을 맺더니 그새 딸기 모양을 하고 있는 열매도 달렸다. 먹을 수 있으려나 미심쩍지만 잘 커줘서 다행이다. 할머니 댁 옆 켠에 딸기밭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여름마다 냉동시켜놓은 딸기를 갈아 주스를 해 주셨다. 그 맛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기만 하다. 아들에게 우리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딸기주스만큼의 감동을 줄 순 없겠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을 아들과도 나눠야겠다.
두릅나물 x나무 0
두릅을 몇 번 먹지도 않았지만 나물이라 하길래 산에 나는 줄로만 알았던 두릅. 다소 뭉툭해 보이는 나뭇가지 위로 초록빛들 머금고 있는데 그것이 두릅이라 하니 놀랍다. 땅두릅보다 더 몸에 좋다 하니 한번 먹어도 볼까 싶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제쯤 두릅다운 두릅이 올라오려나.
튤립
유일하게 우리가 이사 와서 작년 늦가을 심은 꽃. 튤립이 겨울을 나는 꽃일 줄 누가 알았을까. 같은 날 심었는데도 불구하고 삐죽삐죽 크기가 다른걸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군가는 햇빛을 더 본 이유로 누군가는 물을 더 많이 먹은 이유로 누군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성장이 더딜 수도 빠를 수도 있을 거라는. 봄비가 하루씩 올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니 기특하다. 네덜란드에서는 사치품으로 전락하면서 튤립 전쟁까지 일으켰을 정도였다던데 매혹적인 튤립을 얼른 보고 싶다!
아
봄 얘기며
꽃 얘기며
옛날 얘기며
내가 어렸을 때 제일 진부하여 싫어했던 봄. 꽃. 옛날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쓰는 걸 보니 나도 진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