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나라 시댁으로 휴가 갑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 그리고 삶

by 리딩누크

남쪽나라 시댁으로 휴가 가는

나는 한국인 며느리


명절이 되면 직장동료들은

얘기한다. 좋겠다. 시댁이 멀어서.

시댁은 시댁이죠.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지만


우리나라 겨울에는 여름

우리나라 여름에는 겨울인

시댁이 남쪽나라 뉴질랜드라 좋다.


지구를 놓고 보자면

바로 우리 부부야 말로 남남북녀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우리 가족은 이년만에 따뜻한 그야말로 남쪽나라

뉴질랜드에서 따뜻한 겨울휴가를 기대해 왔다.


하나라도 놓칠까 짐을 바리바리 싸놓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떠나는 날 아침

파랗게 질린 남편이

나를 깨웠다.

비행기가 캔슬됐대!!

아닌데 그냥 딜레이로 뜨는데?

회사 때문에 긴 연휴를 쓸 수 없는 나는

남편, 아이와 따로 예약을 해서인지

비행정보가 다르게 보였다.


남편은 항공사와 한참을 얘기했고

다행히 캔슬이 아닌 출국시간 지연이라는 소식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듯했다.


바뀐 항공시각은 국내선 경유에도 영향을 줬다.

당일경유가 다음날 경유로 바뀌었다.

오클랜드서 하루 놀아도 좋잖아?

우리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오클랜드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반바지에 조리를 신은 사람들로 가득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

여름나라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호텔로 가기 위해 여러 사람과 함께 밴을 탔다.

이게 웬걸 우리가 내릴 차례가 되자

기사님은 짐이 바뀐 거 같지만

곧 가져다주겠다며 장담했다.


맨 처음에 내린 사람이 안 그래도

우리 캐리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의문을 품었어야 하는데 하는데라며

남편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하필이면 바뀐 캐리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몽땅 들어 있었고 내 여름옷들이 들어있었다.

평소 출장에서 짐이 도착하지 않는 등 유사한

케이스를

너무나도 많이 겪은 나였기에

괜찮겠지 뭐. 얼른 나가서 요기라도 하자며

남편과 아이를 재촉하여

오클랜드 시내를 걸었다.


열한 시가 넘고 잘 시간이 되어도

가방은 감감무소식

남편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여간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본인이 크리스마스를 망친 거 같다며

자책했다.


운송회사는 자정이 넘어도 소식이 없었고

남편은 잠을 청하지 못했다

평소 잠꾸러기 남편이지만

이튿날 새벽같이 나가

로비에서 짐을 기다렸다.

여덟 시가 넘어 남편은 밝은 얼굴로

캐리어를 들고 돌아왔다.


사실 나도 제대로 잠은 자지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도난에 취약하지 않은

나라는 드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여하튼 우리는 우여곡절

비행기 지연에

생각지 않던 오클랜드 레이오버에

짐을 잃어버렸을 뻔한 그런 상황이었지만

무사히 도착하어 공항에 마중 나온

시부모님, 시누이, 조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전날 도착하여

이미 파티를 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한 것이 어디냐며

가족들과 함께 기념티셔츠를 입을 수 있는 게

행운이라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생각해 보면 여행도 삶도

계획처럼만 되지는 않는다.


몇 시 몇 분 정확한 출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비행기도

고작 새 몇 마리로

엔진결함으로

취소되기도 지연되기도 하며

때로는 기류를 잘 타

빨리 도착하나 미리온 비행기들 때문에

게이트를 찾지 못해 제자리돌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남편을 만난 그 해

계획대로라면 나는 영국에

남편은 뉴질랜드에 있었어야 했을 것

서로 이름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은

꼭 부정적인 것 같지만은 않다.

새로운 변화와 변수가 때로는

더 나은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다못해 이번에 생긴 에피소드들도

친척들과 친구들과 두고두고

회자시키며 즐겁게 떠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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