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물건들을 비우고 정리했다. 처음에는 홀가분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물건이 비워진 자리에 생겨난 여백과 공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만 같은, 상쾌하고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다음으로 뭘 비우면 될까?’ 이런 질문을 매일 나 자신에게 던지면서 무엇을 쓰지 않는지, 무엇을 버릴지, 없어도 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일상을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비우고 비우고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 문득 ‘이건 내가 원하는 마음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우고 버리는 일을 의무감에 휩싸여 기계적으로 집착적으로 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 나는 또 함정에 빠졌구나. 방향을 잃었구나. 초심을 잊었구나. ‘버리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나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건데. 좀 더 편하고 가뿐하게 살기 위해 단순해지려고,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지내려고 했던 건데.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지? 이 쳐지는 기분은 뭐지? 그렇다. 버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무엇을 버릴지에 대해서만 골몰해 있자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흐려지고 무거워진다. 상쾌하게 느껴졌던 여백과 공간도 갑자기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버리고 비우는 일에 열심인 것인지 혼란에 빠지는 시점이 오는 것이다.
이런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깐 멈춰 선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시작해 본다. 비움의 이유는 무엇이며 비움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 나는 비우는 일 그 자체를 위해서 비움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들 사이에 여유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환기를 시키고 싶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주고 싶었다. 비워진 공간 사이로 새롭고 상쾌한 기운과 생명력이 넘치는 공기가 내 삶에 밀물처럼 몰려오길 기대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비우고 버리는 일도 매일 계속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중독이 되는 것 같다. 버리기로 결정한 그 순간의 짜릿한 희열감과 쾌락이랄까. 이건 쇼핑을 하고 물건을 사는 일에서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 감정이라는데. 나는 다시 그 덫에 빠진 것이다. 미니멀리즘 그 자체를 위한 미니멀리즘은 위험하다. 비움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이 우울감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힘차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 나가기 위해 비움이 아닌 ‘채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내 삶을 좋은 것, 나에게 적합한 것, 내가 정말 원하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일들로 채우는 일. 이것이 버리는 일보다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일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비움과 채움을 넘어서서 ‘아끼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언가를 비우고 버릴 때 나의 마음은 단호하고 엄격하고 용기가 넘치지만,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을 주는 따뜻함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내 마음에 들여야 할 것은, 버리는 마음이 아니라 ‘아끼는 마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아끼는 마음. 나의 일상을 정성스럽게 보내는 마음. 나의 인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마음.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 우울함은 이제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무조건 비우고 버리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나의 내면을 따뜻한 것들로 채우고 나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 내가 가진 모든 것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아끼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이제 다시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기로 한다. ‘의미 있는 채움’과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미니멀라이프를. 이제 더 이상 버리는 일에, 비움이라는 끝이 없는 과제에 집착하지 않기로. 의무처럼 매일 무엇을 버릴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기로. 비운 마음속에 좋은 것을 채우기로. 아끼는 마음과 함께 지내기로. 지금 이 순간 나는 따뜻한 홀가분함 속에 파묻혀 사랑의 숨결을 느낀다. 아, 편안하다..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