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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Oct 07. 2024

누리지 않는 삶

평범한 일상 속 한가운데에서 심심한 고요함과 문득 마주칠 때면 언제나 들곤 하는 생각이 있다. 내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은 재미나게 잘만 누리고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심심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 그럴 때마다 심각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친구들은 주말에 여행 가고 놀러 다니고 모두 즐겁게 신나게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을 누릴 줄 모른 채로 뒤쳐지며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 같은 것.


오늘은 평범한 주말. 남편 없이 혼자서 육아를 해야 하는 날. 집안에서 아이와 정신없이 부대끼다가 겨우겨우 힘을 내어 밖으로 한걸음을 내디뎠다. 며칠 전만 해도 뜨거운 태양이 있는 한여름이었는데 이제는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날씨가 흐리고 쌀쌀하다. 곧 비가 내릴 것도 같고 어둑어둑하네. 유모차를 끌며 상념에 빠져든다. 혼자 고요함 속에 있을 때면 곧잘 빠져드는 그런 생각들 속으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인데.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인생을 누려야 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신나게 지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시간이 멈춘 듯 심심하게 가만히 지내도 괜찮은 걸까. 인생을 즐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무거운 생각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또 해본다. 삶을 꼭 최대한으로 누려야만 하나? 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 나라는 사람은 어차피 여행이나 놀이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지 않나? 때로는 어떤 말초적인 감각이나 단순한 쾌락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는 사람이 바로 나이지 않나? 지나가다 문이 열린 미용실 안에서 미용사가 편하게 앉아 TV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왜 이리 부러운 건지. 


삶을 ‘누린다’는 말에는 뭔가 사치스러운 어감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삶을 누린다는 것의 의미를 세상이 부여한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화려하고 멋지고 대단한 그런 것들. 아직도 환상과 착각들로 나의 무의식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이 아닌 어느 순간, 내가 아닌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동경심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쓸데없는 환상과 욕망을 심어주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기 싫어서 영상도 안 보고 SNS도 안 하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내 안에 존재하면서 나를 부추기고 때로는 나를 파괴로 몰고 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그 모든 욕망과 유혹 덩어리를 미디어 탓으로만 돌려버렸던 것이었을까? 미디어가 문제가 아니었나? 결국 내가 문제였나? 하는 씁쓸한 웃음 섞인 생각도 해본다.


누리지 않아도 괜찮은 삶. 누리지 않는 삶.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보자. 자발적 포기라고 해야 할까? 자발적 빈곤? 자발적 비움! 그래, 자발적 비움. 내가 요즘 바라고 있는 것은 바로 자발적 비움이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물건을 비우고 집안을 비우면서 내 머릿속도 내 삶에도 여유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갖는다. 정말 불필요하고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그런 것들을 비우고 홀가분하게 가볍게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 것이다. 무언가 계속해야만 한다는 생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는 생각, 일상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 무언가 계속 끝마치고 완성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로 인해 파생되는 압박감과 부담감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을 진정으로 비우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삶을 누리려고도 애써 즐기려고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애쓰는 모든 것들 속에는 궁극적으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버리는 그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을 누리자’, ‘일상을 즐기자’라는 말은 언뜻 보면 설레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게 또 하나의 무거운 과제를 안겨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뭔가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평소와는 다른 특별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짓눌려 무기력감 마저 느껴진다. ‘일상을 특별하게’, ‘일상을 아름답게’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다. 일상을 특별하게 의식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자연스러운 일상의 흐름을 오히려 놓쳐버리는 기분이다. 일상 속 축복과도 같이 찾아오는 고요함의 순간에도 나에게 어떤 알 수 없는 결핍감과 공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자발적으로 ‘누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형용사와 부사가 붙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동사적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부자연스럽게 의식할 새도 틈도 없이 순간순간 몰입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평생’,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이런 말들이 요즘 내 마음에 잔잔하게 스며들고 있다. 빠르게 빠르게, 더 많이 더 많이, 열심히 열심히, 애쓰고 또 애쓰면서 아등바등, 복잡한 마음과 분주한 정신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 단호하게 선언한다.


깨어있는 의식, 살아있음의 감각,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려는 의지, 읽고 쓰는 영혼,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시선, 감사하는 마음,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이런 것들을 내 존재의 중심에 두고서 그저 가뿐가뿐하게 일상 속을 매일매일 유영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리려 하지도 즐기려 하지도 않고 그저 힘을 빼고 편안하게. 순간에 몰입하고 있다는 의식마저도 초월할 만큼 몰입하면서. 더 이상 나를 좌절감과 허탈함으로 몰고 가는 그런 생각과 감정들에 휘둘림이 없이. 중심을 잡고 굳건하게. 그렇게 나의 본질로서, 내 안에 존재하는 알맹이 그 자체로서, 단단하게 구르고 또 구르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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