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거운 마음을 지닌 채 살아왔다. 20대 한창 예쁘게 꽃피울 나이에 마음에 병이 났고 아팠다. 왜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육체적으로 건강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원하던 직업도 얻었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행복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자꾸만 불편하고 아프고 힘들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그때부터 나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마음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심리학에서부터 명상, 종교, 철학, 문학 등등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책을 고르고 읽고 밑줄을 치고 필사를 하며 공부를 해나갔다.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마음을 직접 해석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내 마음을 치료할 수 있어야 했다. 내 이런 불안정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드러낼 용기조차 없었으니까. 나조차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당황스럽기도 했으니까. 외로움과 쓸쓸함과 공허함으로 가득한 쓰라린 상처들로 피 흘리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른 모든 생활을 잠시 멈춰둬야 했다. 그런 내 마음이 안쓰럽고 또 안쓰러워서 마냥 눈물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마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걸어야 된다고,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욱더 책에 나를 파묻었고 나의 온 존재를 마음공부에 걸고 바쳤다.
책들은 친절하고 다정하게 나에게 다양한 이론과 설명들을 제시해 주었다. 어린 시절과 가족 관계에서 답을 구하는 내용도 있었고, 나의 잘못된 오류적 생각과 신념들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었으며, 인류 공통의 집단무의식적 현상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었다. 여러 문학 작품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며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결국 극복해 내는 해피엔딩 스토리로 나를 잠시나마 위로해주기도 했고, 수많은 에세이들과 산문집들도 각자의 아픔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때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소소한 팁들이 담겨있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들도 유용한 도움을 주었다. 내가 읽었던 그 모든 책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행복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용서와 자비를 베풀며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좀 더 의식적으로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내 마음도 잠잠해지리라고 평화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 효과가 아주 좋았다. 마음속에 차분함과 고요함이 자리 잡는 날도 때때로 찾아왔고, 적어도 더 이상 나 스스로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지는 않게 되었다. 내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그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무조건 피하고 그저 아름답고 예쁜 것들만 내 안에 담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노력들은 선한 에너지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언제나 평화로운 상태에 있기를 바라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래서 나는 반쪽 짜리 행복의 상태에 도달했다. 행복하기 위해 마음은 언제나 긴장을 해야 했고, 안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피하기 위해 항상 애를 써야 했으며, 불편함을 느낄 때에는 온 세상이 멈춘 것만 같은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나에게 해가 될지 모를 어떤 잠재적인 말 한마디와 행동 때문에 흔들리기 싫어서 괜스레 사람들을 피하면서 스스로 자발적인 고립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내 마음이 행복을 느끼도록, 내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피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의 삶은 실제로 조용했고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으며 뭔가 잘못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작은 자극에 오히려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많이 치유했다고 믿었고, 마음공부를 많이 해서 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마음의 주인으로서 내 마음을 통제할 수 있기에 그 어떤 자극이 나에게 찾아와 나를 흔들기로 작정을 해도 그리 오랫동안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나의 ‘마음’을 아주 크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내 삶의 일순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어떤 선택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마음에게 물어보고,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나갔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마음이 나에게 삶에 대한 정답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고,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곧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라는 존재와 삶에 있어서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 사령관이었던 것이다. 내 삶 속에서 ‘마음’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크게 부풀려진 상태였고, 그래서 나는 계속 나의 ‘마음’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느라 정작 눈앞에 일들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세상을 향해 열릴 틈을 도무지 주지 않고 있었다. 그저 내 안에서 그 몸짓을 키우고 또 키우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 마음에 갇혀 있어서, 마음의 힘이 너무 세서, 어느 순간에는 생명이 고갈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음의 통제를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내 마음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고 싶었다.
마음의 상태와 안위를 따지며 살아가는 방식은 나의 생산성과 창조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 안에 갇혀 지금 여기 현재에 있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을 보좌하는데 진을 빼느라 이곳에서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자유롭게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없었다. 언제나 마음이라는 상관이 나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가했기에 결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을 해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과 진실된 더 크고 넓은 우주 속의 참나와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늘 과거에 머물렀고 반복적인 자기 망상적 시나리오에 빠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새로운 삶을 결코 창조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어느덧 삶을 향한 방어적인 태도가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었다.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자유롭게 삶을 유영하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에 흠뻑 젖어들고 싶었다. 현재에 몰입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알고 싶다는 생각보다 무뎌져버린 체념이 더 강했다.
그렇게 별다른 사고의 변화 없이 살아가던 중에 도서관에서 마이클 A. 싱어의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작가의 책은 몇 년 전 한창 마음공부로 영성을 주제로 한 책을 탐독할 때 읽었었기에 반가움과 동시에 어떤 편견 섞인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내가 읽었던 책은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라는 책이었는데,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수많은 영성과 의식을 다루는 책들이 공통적으로 발산하는 그 메시지와 이미지만이 잔상으로 남은 것이다. ‘또 비슷한 얘기를 하겠지... 이제 이런 얘기 하도 많이 읽어서 별로 와닿지 않을 거야.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걸.’ 이런 내 안의 속삭임으로 하마터면 이 책을 그냥 지나쳐버릴 뻔했다. 하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이 책을 손에 집어 들었고,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온다. 가슴에서 감정이 나온다. 나는 마음도 가슴도 아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깨어있는 의식이며, 내 안팎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경험을 관찰하고 지켜보고 있는 중심의 눈이다. 그 모든 것은 결국 흐르고 지나가지만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흔들림 없이 그대로 있다. 마음(생각)이 혹은 가슴(감정)이 나라고 여기는 착각, 그 그릇된 동일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자유와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삶에 이르는 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예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내 안에서 어떤 두툼한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것과 같은 정신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전환과 해방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함을 느꼈다. 깨달음의 빛이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와 나의 의식을 환하게 비추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빠르게 나의 의식을 스쳤다.
마음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마음은 내가 아니다.
마음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나이고, 마음은 마음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독립적으로 나아간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초월하는 존재다.
생각과 감정은 그저 그들대로 놀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을 지켜볼 뿐 그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깨어있는 의식이다.
더 이상 마음에 굴복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마음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나의 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마음의 계략 때문에 나의 무한한 가능성의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
마음으로부터 해방된 나는 이제 의식 위로 떠오르는 나의 진정한 꿈과 이상을 펼치면서 살겠다.
나는 이제 마음이 아닌 머리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늘 깨어있으면서 의식적으로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이제 나의 과제는 이것이다.
‘나의 존재 전체에서 마음이 차지하는 부분을 축소시키는 것’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
마음이 내는 소리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뒤로 제쳐두고 살아가도 된다니.
이 얼마나 홀가분한가.
마음을 이끌고 사는 게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는데
마음과 상관없이 내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여도 된다니
이 얼마나 후련한가.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을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언니는 알무데나 솔라나의 <오로라 오티즈의 이력서>에 나오는 오로라였다. 그녀는 충만하지만 조용하게 자기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는 왜 사람들이 생각도 없이 따져보지도 않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가? 왜 성찰할 시간도 남겨두지 않는가? 평온함이라는 게 뭐가 문제인가? 공허함, 현기증, 불행도 마찬가지다. 난 이런 것들이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미리 알리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읽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나는 언니가 바로 이런 말을 하면서 내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상상했다. 행동하는 속도를 좀 줄이고 생각을 해. 책을 읽어. 나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내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시도했던 힘겨운 나날들이 눈앞을 스친다. 행복은 내 마음속에 없었다. 삶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삶이 곧 행복이다. 행복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고된 일이었다. 파랑새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 살아있는 한 행복은 언제나 삶 그 자체로 나와 함께 있다. 행복하기 위해 나는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행복을 찾느라 나의 생을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나의 삶을 음미하고 즐기고 또 새로운 기쁨과 사랑을 창조하면서 그렇게 의미 있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나 자신의 마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뛰어드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더 이상 마음의 평온함에도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 등등의 그 모든 불행함의 상징들로 자신을 감싸며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내 마음. 약하디 약한 여리고 여린 그 마음. 자신을 봐달라고 자신에게 사랑을 주라고 잘못된 유혹으로 나를 붙잡으려 했던 내 마음. 거리를 두고 마음을 바라보니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마음이 원하는 것도 결국 사랑이고 행복이다. 사랑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이제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나는 눈앞의 현재에 집중할 것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는 나는 행복하다. 내 삶에 사랑이 가득 차오른다. 나의 마음도 행복과 사랑으로 채워진다.
마음과 거리를 두면 마음과 오히려 더 친하고 가까워진다.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로 거듭난다. 마음을 너무 아끼지 말고, 마음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소유하기를 거부하자. 기억하자. 마음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로부터 독립적인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마음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두되, 마음이 나에게 외치는 계락과 유혹의 소리를 무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혹여 자신이 있다면 달래고 포용하여 조용히 시키거나. 오해를 바로 잡자. 내 마음에 따르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나에게 항상 내 마음 편을 들어줘야만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을 존중하는 것이 곧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음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게 마음과 나 서로를 위해 훨씬 더 발전적인 일이다. 마음의 불편함이 뭐가 문제인가? <오로라 오티즈의 이력서>에 나오는 주인공 오로라의 말처럼, 마음의 불평은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미리 알리는 첫걸음인걸. 마음속 불평의 소리를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으로 맞이하자. 마음과 거리를 두면서 비로소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