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 이 맹추같은 것"
어린 시절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내가 자주 듣던 말이 바로 맹추다. 무언가 빠릿빠릿하게 어른들 눈치를 보며 그 뜻을 살펴야하는데, 말을 하면 곧이곧대로만 듣고 자꾸 다시 캐물어서 엄마의 짜증을 돋우었던 것 같다. 결국 심부름은 빠릿빠릿한 동생에게 넘어가곤 했다.
이 '맹추'라는 단어는 살면서 엄마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 사십이 넘은 이 나이까지도 그 목소리는 참으로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사전에 찾아보니 "똑똑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언제부터인가 영악해진 나는 일부러 맹추처럼 행동하며 눈치 없는 척을 한 것 같다.
사전에 따르면 '눈치'란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는 'wits', 'sense'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사실 이 '눈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부러 눈치없는 척을 종종 했다. 나에게 눈치를 주는 온갖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 즉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춰서 행동할 생각이 없어요'라는 뜻을 표현해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 '맹추'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 몰라서 눈치 없는게 아니라 일부러 눈치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반항심과 방어기제가 작동했던 것일까?
어쨌든 가끔은 반사회적으로도 비치는 그런 내 행동 덕분에 누군가는 가슴을 졸이고 뒤에서 욕을 하고, 누군가는 빵 터지며 속시원해 하기도 했다. 또한 누군가는 가슴 깊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나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 같은 사람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심한 상처도 받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정내미가 뚝 떨어져본 경험을 하게 되었기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눈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 보다는 '사려깊은 사람', '섬세한 사람'이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루하루 노력중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