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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by 책빛나

과거 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고, 많이 다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와 동행한 여행의 경험은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이미 나와 잘 알고 가까운 사람-가족 또는 친구-과의 '계획된' 동행인가, 아니면 낯선 이와의 '우연한' 동행인가. 사실 늘 꿈꾸는 여행에 대한 판타지는 영화 '비포 썬라이즈' 같은 것이었다.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낯선 이와의 대화, 그리고 무작정 어딘가에서 같이 내려 끊임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다시 헤어지는... 생각만 해도 로맨틱한 상상이다.


2000년 쯤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동생을 만나 함께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다. 동생과 나는 서로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동행하는 동안 꽤 자주 갈등을 일으켰다. 서로 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이 달라서 티격태격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반면 여행에서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은 신선하고 설렌다. 물론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성도 동시에 있다. 동생과 둘이 독일 뮌헨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갈 때였다. 같은 기차칸에서 만난 한 커플과 대화하면서 같이 웃고 즐기다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며 기분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이후 혼자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 할때 나는 이런 '낯선 이와의 우연한 동행'의 짜릿한 설레임을 느끼고 싶어 겁없이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안좋은 사고는 없었지만, 평소 친한 이들과 만날 때는 쉽게 하지 못했던 깊은 대화가 이어졌고, 내가 몰랐던 새로움을 발견하곤 했다.


우연한 동행은 마치 인생과 비슷하다. 미리 알 수 없기에 신비하고 설레이지만 동시에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와 동행하게 될 때 스스로 되뇌이는 주문이 있다. 너무 겁먹지 말자. 용기를 내어 나아가되 절대 자만하지 말아라. 겸허하게 동행자를 맞이하고 그 빛나는 시간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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