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머리카락 줍기다. 그냥 쉬려고 앉았는데 어느새 바닥의 머리카락을 한올 두올 줍고 있다. 모두 나의 흔적들이다.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일의 8할은 흔적 지우기인듯 하다. 먹은 흔적, 앉은 흔적, 잠잔 흔적. 치우다보면 끝이 없고 늘상 반복되는 일이다. 우리 몸을 씻고 양치를 하는 것도 모두 따지고 보면 흔적 지우기다. 귀찮고 힘들어도 그 일을 멈추면 삶은 엉망이 될 것이다. 어렸을 땐 재밌게 실컷 놀고 밥먹고 자고 나면 모든 어지러진 흔적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몰랐다. 그 흔적을 치운 부모님의 수고와 노력을.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씻거나 단장하는데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 그래서 끝내 살아내는 사람들은 적은 양의 물로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매만진다. 십여년 전만 해도 설겆이, 청소, 씻기, 양치하기가 다 귀찮았다. 얼마나 귀찮으면, '얼른 늙어서 내가 죽어야 이 일들도 끝나겠구나. 재미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이런 하찮은 일에 매여 살아야 하다니... 이건 노예와 다를바 없어!'라며 탄식하곤 했던 나. 그런데 요즘은 설겆이나 청소를 하며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마치 명상을 하듯 평온한 느낌이 든다. 심지어 별일 없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서 이런 반복적인 흔적 치우기를 거뜬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심 감사한 마음도 든다.
그런데 흔적은 한 개인만 치워야할 게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집에서야 내다 버리면 눈앞에 안보이니 그만이지만,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 어마어마한 쓰레기는 어쩔 것인가. 태평양에는 GPGP라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섬이 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남발하여 사용하는 인간은 마치 삶의 의지를 저버린 것 같다. 인간이 남긴 탐욕의 흔적이 지구 곳곳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이 흔적들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이미 소리없이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주우며 지구를 아프게 하는 우리들의 흔적을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