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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by 책빛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이 있는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일년 내내 여름이거나 겨울인 곳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기후에 익숙하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지루하고 시간이 더디 흐를 것만 같다.


나는 봄에 태어나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항상 봄이었다. 일년 중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가장 설레고 기분 좋아진다. 옷장에 들어있는 옷들도 가만 보면 봄옷, 특히 봄 치마나 원피스가 쓸데없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봄은 나에게 그저 아름답기만 한 계절이 아니게 되었다. 벌써 십수년이 되었는데 어느해 4월,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후 또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도 매년 꽃피는 봄이 오면 나를 슬프게 한다. 4월에는 또 혼자 맞이하는 결혼기념일도 들어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부터, 서서히 내 곁에 살아있었던 사람과의 마지막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어떤 추억들은 마치 수없이 반복 재생해서 보는 영화 속 장면 같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오면 나는 꿈 속을 헤메다가, 아주 가끔 떠난 이와 마주한다. 자연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절이 반복되는데, 꽃이 지면 또다시 피고 싹이 돋아나는데, 떠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내 삶에서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추모의 시간이 되었다. 벚꽃이 피고 질 때, 목련이 피고 나서 툭툭 떨어질 때, 그 짧은 순간의 아름다움과 슬픔, 무상함을 함께 느낀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기 전의 봄과 그 후의 봄은 마치 수채화와 유화처럼 다른 채색이었다. 그 전의 봄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 같고,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를 보내주었다면, 이제 봄은 슬픔과 고통의 무게가 덧칠해진 강인한 계절이다. 힘겹게 올린 바위가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신화 속 시지프처럼, 이 계절의 생명력은 나에게 이렇게 외친다.


“힘들면 잠시 쉬어도 괜찮아. 천천히 한발씩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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